
찰박.
찰박.
젖은 맨발이 복도를 밟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사진을 쥔 채 움직이지 못했다.
203호 문은 닫혀 있었다. 문 아래로 복도의 희미한 불빛이 가느다랗게 들어왔다. 누군가 정말 밖에 있다면 그 빛이 가려져야 했다.
그런데 그림자는 없었다.
찰박.
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방 안에 있던 친구들도 입을 다물었다.
채영과 지수는 복도를 확인하러 나갔다가 이미 돌아온 뒤였다. 두 사람 모두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 서 있었다.
유정이가 내게서 사진을 가져갔다.
사진 뒤의 문장을 확인한 유정이 얼굴이 굳었다.
불태워버린다.
“이거 네가 쓴 거 맞아?”
“글씨는 내 건데.”
“그럼 네가 잘못 쓴 거 아니야?”
“아니야.”
나는 바로 대답했다.
“해동 되지 말자고 썼어.”
“확실해?”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솜이도 옆에서 읽었어. 얘가 나보고 혼자 감성적이라고 했잖아.”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상했다.
누군가 내 말을 부정하는 것보다, 모두가 동시에 입을 다무는 게 더 불안했다.
찰박.
문밖의 발소리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우리 방에서 멀어졌다.
찰박.
찰박.
복도 끝을 향해 천천히 사라졌다.
세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다솜이 아니야?”
“그러면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했겠지.”
내가 말했다.
유정이가 방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붙잡았다.
“열지 마.”
“발소리 멀어졌어.”
“그래도.”
“다솜이일 수도 있잖아.”
“아니면?”
유정이가 나를 봤다.
“아니면 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인지 나도 몰랐다.
다만 다솜이라면 신발도 휴대전화도 두고, 창문으로 들어온 뒤, 젖은 발자국만 남기고 다시 사라질 이유가 없었다.
다솜이가 아닌 무언가라면 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은이가 내 손목을 감쌌다.
팔찌가 손등에 눌렸다.
“우리 다 같이 확인하자.”
“싫어.”
나는 하은이를 바라봤다.
“진짜?”
“응.”
하은이가 손에 힘을 주었다.
“계속 옆에 있을게.”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나는 결국 문 앞에 섰다.
유정이가 손잡이를 돌렸다.
---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장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었지만 밝지 않았다. 누렇게 바랜 벽지와 오래된 나무 바닥만 흐릿하게 드러났다.
사람은 없었다.
대신 물이 있었다.
203호 문 앞에서 시작된 젖은 발자국이 복도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발자국은 맨발이었다.
다솜이와 비슷한 크기였다.
발가락 모양까지 또렷했다.
유정이가 손을 가까이 댔다.
“따뜻해.”
“뭐?”
나도 쪼그려 앉아 물자국에 손끝을 댔다.
미지근했다.
막 온천탕에서 나온 사람이 흘린 물처럼.
복도는 차가웠다. 그럼에도 발자국에서는 희미하게 수증기까지 올라왔다.
지수가 휴대전화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일단 남겨놔야 돼.”
그 말에 나는 지수를 쳐다봤다.
“뭘 남겨?”
지수가 잠깐 멈췄다.
“다솜이 찾을 때 필요할 수도 있잖아.”
나는 다시 발자국을 봤다.
그것은 계단으로 향하지 않았다.
복도 끝 유리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구관 연결 통로.
유리문에는 두꺼운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낮에 봤던 출입 금지 표지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발자국은 닫힌 문 앞에서 끝나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불이 꺼진 구관 복도 안쪽까지.
“문 잠겨 있잖아.”
보민이가 말했다.
지수가 쇠사슬을 당겨봤다.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잠겨 있었다.
“다솜이가 어떻게 저쪽으로 가?”
세아가 물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나는 사진을 다시 내려다봤다.
불태워버린다.
검은 글씨가 아까보다 더 진해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는데, 내 손에 들린 다솜이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드르르륵.
나는 놀라 놓칠 뻔했다.
“뭐야?”
화면에 dm이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는 다솜이의 계정이었다.
단디엠에 짧은 문장 하나가 올라왔다.
찾으러 오지 마.
친구들의 휴대전화가 차례로 울렸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새 dm이 하나 더 올라왔다.
여관 주인한테 말하지 마.
“잠깐만.”
“다솜이가 직접 보내고 있잖아.”
“다솜이 폰은 여기 있는데.”
“노트북이나 다른 기기로 보낼 수도 있잖아.”
지수가 말했다.
“계정 로그인돼 있으면 가능해.”
“다솜이가 노트북 가져왔어?”
“태블릿이 있을 수도 있고.”
“봤어?”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단디엠을 다시 봤다.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세 번째 dm이 도착했다.
경찰 부르면 진짜 안 돌아가.
손끝이 차가워졌다.
친구들도 그 문장을 읽었다.
유정이가 낮게 말했다.
“다솜이 화난 것 같은데.”
“뭐 때문에?”
“모르지.”
“화났다고 이렇게 숨어?”
내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장난일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자.”
아무도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졌잖아.”
나는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지금 이게 장난처럼 보여?”
하은이가 내 앞을 막았다.
“일단 다솜이가 dm 보내잖아.”
“저게 진짜 다솜이인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확인하자는 거야.”
“어디서?”
하은이의 시선이 유리문 너머로 향했다.
검은 구관 복도.
발자국은 그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구관 대욕장.”
유정이가 말했다.
“낮에 다솜이가 저기 가보고 싶다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언제?”
“네가 방에 먼저 올라갔을 때.”
유정이는 쇠사슬을 살폈다.
“프런트에서 열쇠만 빌리자.”
“그럼 주인한테 말하는 거잖아.”
세아가 끼어들었다.
“그냥 시설 구경한다고 하면 되지.”
“새벽 다섯 시에?”
세아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한 명씩 봤다.
다솜이가 사라졌는데도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안 갈래.”
내가 말했다.
“여기서 기다릴 거야.”
하은이가 바로 물었다.
“혼자?”
나는 구관 너머를 봤다.
불이 꺼진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리문 가장 먼 쪽에서 흰 천 같은 것이 잠시 움직인 것 같았다.
온천복 자락처럼.
나는 시선을 돌렸다.
혼자 남을 자신은 없었다.
“……같이 가.”
결국 그렇게 말했다.
---
구관 열쇠는 프런트 벽 안쪽의 열쇠함에 걸려 있었다.
여관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유정이는 잠든 주인을 깨우는 대신 열쇠를 꺼내왔다.
쇠사슬을 풀자 유리문이 낮은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구관에 들어서는 순간 온도가 달라졌다.
신관보다 훨씬 추웠다.
그런데 공기는 축축했다.
따뜻한 물 냄새가 벽과 바닥에 스며 있었다.
지수의 손전등이 복도를 비췄다.
발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우리를 기다리는 것처럼 일정했다.
나는 하은이 손을 잡았다.
하은이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얽었다.
복도 양옆에는 사용하지 않는 객실이 늘어서 있었다.
301호.
302호.
303호.
문마다 작은 나무패가 걸려 있었다.
어느 방에서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복도 끝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그곳에서 발자국은 사라졌다.
대신 바닥에 물이 길게 번져 있었다.
누군가 젖은 옷자락을 끌고 간 것 같았다.
“다솜아.”
채영이가 아래를 향해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김다솜.”
이번에는 내가 불렀다.
계단 아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톡.
톡.
톡.
세아가 내 뒤에서 속삭였다.
“아까 다솜이가 웃은 거 맞지?”
“그런 말 하지 마.”
“아니, 나도 들었어.”
“그럼 불러봐.”
세아는 입을 닫았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
구관 대욕장은 낮에 본 신관보다 두 배쯤 넓었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탕 안에는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검은 수면 위로 얇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벽에는 오래된 산수화 타일이 붙어 있었다. 먹색 산과 소나무, 흰 구름이 갈라진 타일 위에서 이어졌다.
입구 옆의 시계는 멈춰 있었다.
4시 16분.
내가 처음 눈을 뜬 시간이었다.
나는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린아.”
하은이가 불렀다.
“왜?”
“저기.”
탕 가장 안쪽으로 젖은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발자국은 온천탕을 빙 돌아, 직원 전용이라고 적힌 작은 문 앞에서 멈췄다.
문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채영이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잠겼어.”
나는 문 앞 바닥을 봤다.
마지막 발자국은 문을 향하지 않았다.
반대쪽이었다.
발끝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문 앞까지 간 뒤,
뒤돌아서서 우리를 기다린 것처럼.
“이상해.”
내가 중얼거렸다.
채영이가 돌아봤다.
“뭐가?”
“발 방향.”
“다솜이가 다시 돌아나왔나 보지.”
“그러면 다음 발자국이 있어야 하잖아.”
마지막 발자국 뒤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사람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처럼.
채영이는 잠시 바닥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열쇠 찾아볼게.”
“어디서?”
“관리실이나 프런트.”
“같이 가.”
내가 말했다.
“여기 사람 많잖아.”
채영이가 나를 보며 억지로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금방 올게.”
“그냥 주인 깨우자.”
유정이가 끼어들었다.
“다 같이 우르르 움직이면 다솜이 놓칠 수도 있잖아.”
“문 잠겨 있고 발자국도 끝났어. 얼른 신고하면 되잖아.”
그때 잠긴 문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쿵.
모두 얼어붙었다.
쿵.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채영이가 문에 귀를 댔다.
“다솜아?”
문 안에서 무언가 바닥을 긁었다.
드르륵.
“다솜이 맞는 것 같아. 열쇠 찾아올게.”
채영이는 복도로 뛰어나갔다.
나는 따라가려 했다.
유정이가 앞을 막았다.
“문 안에 다솜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같이 가면 되잖아.”
“여기 아무도 없으면 문 안에서 또 소리 날 때 못 듣잖아.”
나는 화가 났다.
“왜 자꾸 한 명씩 움직이는데?”
유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긴 문 안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쿵.
나는 그쪽을 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누군가 안에서 웃었다.
다솜이 웃음과 비슷했다.
---
채영이가 떠난 지 3분이 지났다.
5분.
돌아오지 않았다.
유정이가 전화를 걸었다.
대욕장 밖 복도 어딘가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짧게 울리다가 끊겼다.
우리는 복도로 나갔다.
“채영아?”
유정이가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복도 모퉁이 너머.
우리는 그쪽으로 뛰었다.
채영이는 없었다.
바닥에 휴대전화만 놓여 있었다.
화면은 켜져 있었다.
카메라 앱이 실행된 상태였다.
영상 하나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촬영된 곳은 구관 대욕장이었다.
몇 분 전의 우리 모습이 나왔다.
나는 하은이 손을 붙잡고 잠긴 문 앞에 서 있었다.
유정과 지수, 세아, 보민도 보였다.
그런데 촬영 위치가 이상했다.
화면은 복도 모퉁이에서 우리를 몰래 찍고 있었다.
채영이가 방금 전 그곳에 숨어 촬영한 것처럼.
“채영이가 찍은 거야?”
내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영상 속 나는 잠긴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은이가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젖은 온천복을 입은 사람.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 채 나와 등을 맞대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누구야.”
화면을 다시 봤다.
사람은 여전히 내 뒤에 있었다.
그런데 영상 속 친구들은 아무도 그 사람을 보지 않았다.
마치 카메라에만 찍힌 것처럼.
영상 속 젖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입이 보였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여섯 명.
영상이 끝났다.
---
나는 채영이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나 갈래.”
내가 말했다.
“여기서 나갈 거야.”
“서린아.”
“주인 깨우고 바로 신고할 거야.”
“채영이부터 찾아야지.”
유정이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찾지 마.”
내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끼리 찾지 말자고.”
“채영이 바로 근처에 있을 거야.”
“다솜이도 그랬잖아.”
“…….”
“바로 근처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없어졌잖아.”
하은이가 내 어깨를 감쌌다.
나는 그 손을 떼지 못했다.
“하은아.”
“응.”
“나 진짜 무서워.”
“알아.”
“그럼 가자.”
나는 하은이를 붙잡았다.
“여기서 나가자.”
하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말 안 해?”
“……조금만.”
그 말에 몸이 굳었다.
조금만.
나는 하은이 얼굴을 바라봤다.
“너도 왜 그래?”
하은이가 입을 열려는 순간,
대욕장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린아.”
다솜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문 쪽을 봤다.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잠긴 직원용 문 안쪽.
“다솜아?”
내가 물었다.
잠시 침묵.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서린아.”
채영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같은 문 안에서 들렸다.
“너희 거기 있어?”
나는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대답해.”
안에서는 웃음이 들렸다.
다솜이 먼저 웃었다.
뒤이어 채영이도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이었다.
두 목소리가 벽 안쪽을 돌아 우리 주변으로 번졌다.
“왜 그래.”
나는 울면서 말했다.
“그만해.”
웃음이 뚝 끊겼다.
잠시 뒤 다솜이 물었다.
“서린아.”
채영이가 말을 이었다.
다음은 누구일까?
그 순간 대욕장의 모든 등이 한꺼번에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