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식이 끝난 다음 날, 우리는 영주시를 떠났다.
정확히는 영주시 외곽까지였지만,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다들 정말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떠들었다. 교복 대신 각자 가장 아끼는 옷을 입었고,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웃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계속 만나고 싶은 마음과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대학이 달랐다. 사는 곳도 달라질 예정이었다. 유정이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고, 지수는 재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은이는 당장 아르바이트부터 구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내내 여덟 명이었다.
차유정.
백하은.
김다솜.
문채영.
오지수.
임세아.
최보민.
그리고 나, 윤서린.
1학년 3반에서 만난 우리 무리는 해동이었다.
담임의 썰렁한 농담이 끝나면 다같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밥먹고 복도에서 수다를 붙였고, 체육대회 때도 같은 반보다 서로의 스파이가 되어 이기도록 도왔다. 누군가 결석하면 단체 디엠방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말도 늘 같았다.
오늘 김다솜 혼자 빙하기 안 맞아서 늙어 빠짐.
한 사람이 빠진 것뿐인데도 신경이 늘 쓰인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농담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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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두 시간을 달려 무악산온천에 도착했다.
2026년 2월의 산은 색이 거의 없었다. 눈은 며칠 전 내린 흔적만 남아 길 가장자리에 검게 얼어붙어 있었고, 잎을 모두 잃은 나무들이 산비탈을 빽빽하게 덮고 있었다.
온천 마을에 들어서자 희뿌연 수증기가 지붕 사이로 피어올랐다.
“와, 여기 진짜 예쁘다.”
다솜이가 창문에 얼굴을 붙였다.
“사진보다 훨씬 낫네.”
“밤 되면 무서울 것 같은데.”
내가 말하자 세아가 바로 웃었다.
“윤서린 시작했다.”
“뭘 시작해.”
“또 도착도 안 했는데 무섭대.”
“무섭다고 안 했어. 무서울 것 같다고 했지.”
“그게 그거야.”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애들은 내가 겁이 많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낯선 숙소에서 문을 잠갔는지 두 번 확인했고, 산에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와야 마음이 놓였다. 단체로 움직이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면 돌아올 때까지 은근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겁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한 곳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다.”
유정이가 말했다.
버스가 멈춘 곳은 마을 가장 안쪽이었다.
짙은 갈색 목재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 위에 세로 간판이 달려 있었다.
무악산온천 여관.
현관 앞 돌수로로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증기가 낮게 깔려 사람의 발목을 감쌌다.
신관은 새로 고친 흔적이 있었지만, 뒤쪽 구관은 낡은 처마와 창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건물을 연결한 복도는 유리로 막혀 있었고, 그 너머는 불이 꺼져 있었다.
여관 입구 옆에는 산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무악산 폐쇄등산로
낙석 및 사면 붕괴 위험.
안전시설 미설치.
출입 금지.
나는 안내판을 읽느라 걸음을 멈췄다.
하은이가 내 옆에 섰다.
“올라가고 싶은 건 아니지?”
“반대야.”
“뭐가?”
“저런 데는 절대 가면 안 된다고.”
하은이가 피식 웃었다.
“누가 가재?”
“다솜이 같은 애는 갈 수도 있잖아.”
앞에서 사진을 찍던 다솜이가 바로 돌아봤다.
“나?”
“너 전에 계곡에서도 출입 금지 줄 넘어갔잖아.”
“발만 넣었거든?”
“줄은 넘었잖아.”
다솜이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필름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안내판 아래쪽을 한 번 더 봤다.
붉은 페인트가 벗겨진 화살표가 산 뒤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 길은 여관의 구관 뒤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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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을 방은 신관 2층 끝에 있는 203호였다.
온돌방 하나와 작은 화장실, 산이 보이는 창문이 있는 방이었다. 여덟 명이 자기에 넉넉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짐을 풀고 나니 발 디딜 곳이 부족했다.
“창가 내 자리.”
지수가 가장 먼저 가방을 던졌다.
“왜 네 자리야?”
“촬영해야 되니까.”
지수는 여행 내내 영상을 남기겠다며 작은 카메라와 삼각대까지 가져왔다.
다솜이가 렌즈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졸업여행 첫날입니다.”
“비켜.”
“네 얼굴 때문에 초점 나가잖아.”
카메라 앞에서 다솜과 지수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유정이는 침구 수를 확인했고 채영이는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을 정리했다.
언제나 그랬다.
유정이는 계획했고, 채영이는 정리했고, 다솜과 세아는 어질렀다. 지수는 그걸 찍었고, 보민은 옆에서 웃었다.
하은이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이 안정적인 관계가 좋았다.
“좋아?”
“응.”
“표정은 아닌데.”
“그냥 좀 이상해서.”
“뭐가?”
나는 방을 둘러봤다.
“졸업했다는 게.”
말하고 보니 조금 우스웠다.
어제까지 학생이었는데 오늘부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 여행이 끝나면 정말 각자의 생활로 흩어질 것 같았다.
하은이가 어깨로 나를 가볍게 밀었다.
“너 또 혼자 심각해졌지.”
“안 심각해.”
나는 하은이를 밀어냈다.
하은이는 내가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다른 여섯 명과 가까워졌다.
하은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하은이 앞에서는 괜찮은 척을 오래 하지 못했다.
“우리 안 흩어져.”
하은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결말은 알고 있는데,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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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푼 우리는 온천에 갔다.
여관 신관에 있는 대욕장은 깨끗했지만,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구관 쪽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탈의실 한쪽에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구관 대욕장 시설 점검 중. 출입 금지.
세아가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저쪽이 더 넓게 생겼다.”
“보지 마.”
내가 대답했다.
“왜?”
“괜히 네가 무섭게 만들잖아.”
세아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폐교나 여관, 터널 같은 곳에 가면 반드시 있지도 않은 괴담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모두 웃었지만, 밤이 깊어지면 꼭 누군가 진짜냐고 물었다.
“사실 온천 여관은 물귀신보다 뜨거운 물에 죽은 귀신이—”
“임세아.”
내가 이름을 부르자 세아가 웃었다.
“알았어. 안 할게.”
유정이가 탕 안에서 손뼉을 쳤다.
“오늘은 이상한 얘기 금지. 서린이 생일 전날이잖아.”
“생일 당일에는 해도 돼?”
다솜이가 물었다.
“아예 하지 마.”
내가 대답하자 다들 웃었다.
하은이만 웃지 않고 나를 봤다.
“진짜 싫어?”
“응.”
“알았어.”
짧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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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해가 거의 져 있었다.
산은 창문 밖에서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낮에는 멀리 있던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는 여관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지수는 카메라를 켜놓았고, 다솜은 바닥에 엎드려 핸드폰에서 사진을 넘겼다.
“얘들아, 윤서린 1학년 때 봐.”
“보지 마.”
나는 폰을 빼앗으려 했다.
다솜이 재빨리 몸을 굴렸다.
“앞머리 개웃겨.”
“유행이었어.”
“어디에서?”
“다들 저랬거든?”
“난 아니었는데.”
“너도 봐줄만했어.”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해도 웃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사진 속 우리는 지금보다 어렸고, 지금보다 서로를 덜 알았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함께 있었다.
어느 순간 채영이가 말했다.
“오늘 다 같이 사진 찍자.”
“지수가 계속 찍고 있잖아.”
“영상 말고 사진.”
유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명 전부 나온 거 한 장 있어야지.”
“생일 되기 전에 찍자.”
벽시계는 밤 11시 4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생일까지 18분 남았다.
“뭘 그렇게까지 해.”
내가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세아와 보민이 이불을 벽 쪽으로 밀었고, 다솜은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너 필카도 가져왔어?”
“필름 비싸지 않아?”
“센스 좋지.”
다솜은 삼각대 위에 필름 카메라를 올렸다. 우리는 여관에서 준 짙은 남색 온천복을 맞춰 입고 벽 앞에 섰다.
유정이가 자리를 정했다.
“서린이 가운데.”
“왜?”
“주인공이니까.”
“부담스러워.”
“빨리 서.”
하은이가 내 손목을 잡아 가운데로 끌었다.
왼쪽에는 하은이와 지수, 채영이 섰고, 오른쪽에는 유정과 지수, 세아, 보민이 몸을 붙였다.
“다 들어와?”
“세아 조금 안쪽.”
“더 가면 보민이랑 붙어.”
카메라 위의 불빛이 깜빡였다.
나는 빠르게 나와 왼쪽 맨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솜이 급히 뛰어왔다.
“찍힌다!”
누군가는 얼굴 옆에 V를 그리고, 좋아하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해동이 안 흩어진다는 하은이의 말에 대답했다. OK로.
찰칵.
하얀 빛이 방을 삼켰다.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카메라 아래에서 사진 한 장이 천천히 밀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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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닥에 둘러앉아 사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회색뿐이었다.
조금씩 벽과 창문이 드러났다.
그다음 우리의 온천복.
얼굴.
여덟 명.
“잘 나왔다.”
보민이가 말했다.
“나 못생겼어.”
채영이가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괜찮아. 티 안 나.”
“서린이는 왜 OK야?”
세아가 물었다.
"우리 안흩어질거니까."
결말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누구도 빠지지 않았으니까.
지수가 검은 펜을 꺼냈다.
“뒤에 한마디씩 쓰자.”
“졸업앨범도 아닌데?”
“그래야 추억이지.”
사진이 차례대로 돌았다.
친구들은 사진 뒷면에 짧은 문장을 남겼다.
대학 가도 빙하기다.
또 여행 가자.
단디엠 나가면 죽는다.
스무 살에도 철들지 말자.
내 차례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한동안 빈 자리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쓸지 생각하다가 가장 단순한 문장을 적었다.
해동 되지 말자.
다솜이가 옆에서 읽었다.
“윤서린답다.”
“그게 무슨 뜻이야?”
“혼자 감성적이야.”
지수가 웃었다.
“그래서 더 서린이답다고.”
나는 사진을 다솜이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런데 유정이가 말했다.
“그건 서린이가 가져.”
“생일 기념!”
사진은 결국 내 가방 안쪽 주머니에 들어갔다.
그때 하은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손 줘.”
“왜?”
“빨리.”
내가 오른손을 내밀자 하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왼손.”
하은이가 내 손목에 가느다란 은색 팔찌를 둘렀다.
팔찌에는 작은 매듭이 일정한 간격으로 묶여 있었다.
“이게 뭐야?”
“생일 선물.”
“선물 준비하지 말랬잖아.”
“비싼 거 아니야.”
하은이는 고리를 채운 뒤 매듭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다.
“우리 다같이 준비했어.”
“너희?”
“응.”
“고마워.”
말은 간단했지만 팔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은이가 웃었다.
“잃어버리지 마.”
그때 시계가 열두 시를 알렸다.
휴대전화 알람이 한꺼번에 울렸다.
친구들이 불을 끄고 작은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시작됐다.
나는 촛불 너머로 친구들의 얼굴을 봤다.
다솜.
채영.
지수.
세아.
보민.
유정.
하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소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사진 뒤에 썼던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해동 되지 말자.
그리고 초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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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방이 조용해졌다.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하은이 옆에 누웠다.
바닥은 뜨거웠고 창문 쪽 공기는 차가웠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콸콸.
낮게.
규칙적으로.
잠들기 전 나는 왼손목의 팔찌를 한 번 만졌다.
매듭을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눈을 감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무언가가 내 뺨에 닿았다.
차가운 공기였다.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전 4시 16분.
분명 자기 전에 창문을 닫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잠금장치까지 눌렀다.
돌아서려는데 발바닥에 축축한 감촉이 닿았다.
나는 아래를 봤다.
젖은 발자국이었다.
맨발 자국.
창문 아래에서 시작된 발자국이 방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온돌 바닥 위로 작은 물방울들이 반짝였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발자국을 따라갔다.
발자국은 잠든 친구들 사이를 지나 방 한가운데에서 끝났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온천을 다녀온 뒤 누군가 발을 제대로 닦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물이 지금까지 마르지 않은 건 이상했지만, 방바닥이 덜 따뜻한 곳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그리고 무심코 사람을 셌다.
하은.
유정.
채영.
지수.
세아.
보민.
나.
나는 다시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었다.
다솜이가 없었다.
---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다솜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김다솜.”
현관을 확인했다.
다솜이 운동화가 있었다.
여관 슬리퍼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침대 옆에는 다솜이 휴대전화가 충전기에 연결돼 있었다.
검은 화면 위에 알림 불빛만 작게 깜빡였다.
나는 하은이를 깨웠다.
“하은아.”
“……왜.”
“일어나 봐.”
“몇 시야?”
“다솜이가 없어.”
하은이가 눈을 떴다.
그 소리에 유정이도 몸을 일으켰다.
“뭐?”
“다솜이 없어.”
처음에는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솜이라면 충분히 장난을 칠 수 있다고 했다.
창고에 숨었을 수도 있고, 혼자 온천에 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발도 휴대전화도 방에 있었다.
무엇보다 젖은 발자국은 창문에서 시작해 방 한가운데에서 끝나 있었다.
“여관 주인한테 말하자.”
내가 휴대전화를 집었다.
유정이가 바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봐.”
나는 유정을 바라봤다.
“뭘 기다려?”
“다솜이가 장난치는 걸 수도 있잖아.”
채영이가 발자국을 살펴봤다.
“온천복 입고 복도에 나갔을 수도 있어.”
“그럼 슬리퍼는?”
“맨발로 갔나 보지.”
“왜?”
채영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때 하은이가 내 손목을 잡았다.
“우리끼리 방부터 찾아보자.”
하은이까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멈췄다.
방 안에는 여섯 친구가 있었다.
모두 다솜이가 장난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만 지나치게 겁먹은 사람 같았다.
나는 결국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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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 안을 다시 뒤졌다.
이불장.
커튼 뒤.
탁자 아래.
화장실.
숨을 곳은 없었다.
채영과 지수가 복도를 확인하러 나갔고, 유정은 창문 아래의 발자국을 촬영했다. 세아와 보민은 다솜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나는 현관 옆에 서 있었다.
계속 다솜의 신발을 보고 있었다.
양쪽 모두 있었다.
젖지도 않았다.
그때 문 아래에서 종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사각.
아주 느리게.
무언가 문틈을 통과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바로 알아봤다.
어젯밤 찍은 사진이었다.
“이거 왜 여기 있어?”
내 가방은 방 안쪽에 있었다.
분명 사진도 안쪽 주머니에 넣어뒀다.
나는 급히 가방을 열었다.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친구들이 내 주위로 모였다.
사진 앞면에는 여덟 명이 그대로 있었다.
다솜도.
사진 속 내 뒤에서 손가락을 펼치며 웃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친구들이 남긴 문장들이 빼곡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 적었던 문장.
나는 그 줄을 읽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을 깜빡였다.
다시 읽었다.
검은 글씨는 분명 내 필체였다.
하지만 내가 쓴 문장이 아니었다.
불태워버린다.
나는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분명 달랐다.
해동 되지 말자.
그렇게 썼다.
그런데 사진 뒤에는 말도 안되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바로 그 순간.
방 밖 복도 끝에서 다솜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짧게.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맨발이 젖은 바닥을 밟는 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졌다.
찰박.
찰박.
찰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