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이야.”
유정이의 말이 안개 속에서 떠다녔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앞에는 일곱 명이 서 있었다.
다솜. 채영. 지수. 세아. 보민. 유정. 하은.
모두 살아 있었다. 온몸이 멀쩡했다. 피를 흘리는 사람도 없었고, 젖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도 없었다. 다솜은 아침에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채영이는 복도에 떨어져 있던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수의 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장난?”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유정이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일이라서.”
나는 친구들 뒤를 봤다. 전구가 나무 사이를 따라 켜져 있었다. 하얀 천. 생일 케이크. 모든 것이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뭐가 장난인데?”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솜이를 가리켰다.
“너 새벽에 없어졌잖아.”
다솜이의 입술이 떨렸다.
“204호 옆에 숨어 있었어.”
“발자국은?”
“온천수 묻혀서…… 내가 찍었어.”
“디엠은?”
지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약 전송했어. 다솜이 계정을 다른 기기에 연결해두고.”
나는 채영이를 봤다.
“너는?”
“세탁실 뒤 통로로 나갔어.”
“네 휴대전화에 찍힌 사람은?”
채영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지수가 대신 말했다.
“다솜이가 온천복 입고 있던 거야. 가발도 썼고.”
“텔레비전은?”
“내가 준비했어.”
지수는 카메라를 내렸다.
“미리 찍어둔 영상이랑 실시간 화면을 틀었어.”
“사진.”
나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한 채 말했다.
“뒤에 글씨 바뀐 사진.”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준비했어.”
유정이가 대답했다.
“네가 가방에 넣은 걸 바꿔놓은 거야.”
친구들이 바꾼 것이었다.
“다섯 시 반은?”
“끝내기로 한 시간이었어.”
보민이가 울면서 말했다.
“그때 다 같이 나와서 생일 축하해주려고 했어.”
“시간이 갑자기 바뀐 건?”
“네 휴대전화가 꺼진 뒤에는 우리 휴대전화만 봤잖아.”
지수가 말했다.
“미리 시간을 바꿔놨어. 벽시계도 유정이가 조작했고.”
“목소리는?”
“문은?”
“화장실은?”
보민이가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에 답이 있었다.
젖은 발자국도.
잠긴 방 안의 목소리도.
나를 촬영하던 카메라도.
사라진 친구들도.
기괴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를 둘러싼 일곱 사람뿐이었다.
---
“왜?”
내가 물었다.
짧은 말이었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까지 했어?”
유정이가 말했다.
“특별하게 해주고 싶었어.”
“뭐를?”
“생일.”
“내 생일을?”
나는 공터 한가운데 놓인 케이크를 봤다.
초는 아직 켜지지 않았다.
그 옆에는 종이 왕관과 선물 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저 앞에 서면 웃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울면서 욕을 하다가도 결국 케이크를 보고 웃을 거라고.
“네가 원래 겁이 많으니까.”
다솜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마지막에 우리가 다 나오면 진짜 놀랄 것 같아서.”
“미안해.”
“내가 놀란 것처럼 보였어?”
다솜이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친구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내가 몇 번 말했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몇 번 말했냐고.”
하은이가 눈물을 닦았다.
“서린아.”
“나 무섭다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몇 번 말했어?”
하은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한 명씩 짚었다.
“채영이가 나갈 때 가지 말라고 했어. 세아한테도 혼자 가지 말라고 했어.”
나는 유정을 봤다.
“너는 계속 기다리라고 했어.”
유정이의 입술이 떨렸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나니까.”
“그게 언제였는데?”
유정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울기 전?”
“…….”
“너희를 못 믿겠다고 말하기 전?”
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까부터 숨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혼자 산으로 도망친 뒤?”
유정이가 한 걸음 다가왔다.
“서린아, 진짜 미안해.”
나는 바로 뒤로 물러났다.
“오지 마.”
유정이가 멈췄다.
“이제 다 끝났어.”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짧고 마른 소리였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가 잘못했어.”
“너희는 계속 그랬어.”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끝난다고.”
친구들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나는 한 걸음씩 물러났다.
“서린아, 뒤에 위험해.”
“이번에는 진짜야.”
그 말에 온몸이 굳었다.
이번에는 진짜야.
유정이도 그렇게 말했다.
하은이도.
사라지기 직전의 모든 친구가 비슷한 말을 했다.
금방 돌아올게.
바로 앞이야.
여기 있어.
안 떠날게.
나는 이제 어떤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매듭이 손바닥에 박혔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내 비명이 산속에 울렸다.
일곱 명이 동시에 멈췄다.
처음이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모두가 멈춘 것은.
하지만 너무 늦었다.
아래에서는 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은이의 얼굴이 변했다.
친구들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발 아래가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몸이 뒤로 기울었고, 둔탁한 소리가 뒤늦게 들렸다.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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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이의 얼굴이 멀어졌다.
나뭇가지들이 눈앞을 스쳤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그리고 어딘가에 부딪힌 뒤에는 하늘만 보였다.
회색 하늘.
앙상한 나무들.
멀리서 나를 찾는 목소리.
해동이 절벽 위로 몸을 내밀었다.
“윤서린!”
“서린아!”
“대답해!”
누군가는 내 이름을 불렀고,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대답하려 했다.
나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나 아직 여기 있다고.
하지만 가슴에서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았다.
위쪽에서 휴대전화 불빛들이 흔들렸다.
가까이 오는 것 같다가 다시 멀어졌다.
친구들은 내 위치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무서웠다.
떨어지는 순간보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눈을 감기 직전,
나는 손목을 느꼈다.
팔찌가 없었다.
매듭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가느다란 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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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이 추락한 직후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구조대가 무악산 폐쇄등산로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사고 지점 아래에는 오래전 산사태로 무너진 비탈과 깊은 배수로가 있었다. 온천 마을의 수로와 계곡이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었고, 안개와 비까지 겹쳐 시야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해동은 밤새 서린의 이름을 불렀다.
하은은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절벽 아래를 향해 외쳤다.
그러나 서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색은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끊어진 팔찌의 은색 줄은 절벽 가장자리에서 발견됐다.
서린의 신발 한 짝도 아래쪽 비탈에서 나왔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시신이 없었기 때문에 윤서린의 사건은 추락사가 아닌 무악산온천 졸업여행 중 실종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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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여관과 산속에서 카메라 두 대를 발견했다.
친구들이 설치한 것이었다.
203호 천장.
무악산 폐쇄등산로 입구.
그리고 핸드폰에 있는 영상도 확인했다.
모든 영상에는 윤서린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화를 냈다.
그다음에는 울었다.
마지막에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지 마.
우리끼리 찾지 말자.
그냥 여관 주인한테 말하자.
나 두고 가지 마.
나 무서워.
영상 밖에서는 매번 비슷한 대답이 들렸다.
조금만 기다려.
바로 앞까지만 가보자.
이번에는 진짜야.
조금만 더 하면 끝나.
조사관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몇 번이나 재생을 멈췄다.
친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을 촬영했는지 알았다.
생일 몰래카메라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 사람의 도움 요청을 차례로 무시하는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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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모든 계획을 자신이 세웠다고 진술했다.
다솜은 첫 번째로 사라지겠다고 자원했다.
지수는 카메라와 영상 장치를 준비했다.
채영은 여관 구조를 미리 확인했다.
세아는 목소리와 괴담을 만들었다.
보민은 중간에 멈추고 싶었지만 끝까지 행동하지 못했다.
하은은 서린이 자신을 가장 믿는다는 사실을 이용해 마지막 장소까지 데려갔다.
누구도 서린이 죽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상 안의 서린이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줄은 몰랐지만,
서린이 무서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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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뒤, 유정은 친구들에게 제안 하나를 보냈다.
서린에게 보내는 편지.
장난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죽을 줄 몰랐다는 변명도 남기지 않았다.
첫 문장은 모두 같았다.
서린아, 우리는 네가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다음에는 자신이 한 일을 하나씩 말했다.
나는 네가 신고하지 못하게 막았어.
나는 네가 울고 있는데도 계속 촬영했어.
나는 네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혼자 사라지는 연기를 했어.
나는 그만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았어.
하은의 편지는 마지막에 담겨 있었다.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쓰기 시작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네가 나를 믿는다는 걸 알았어.
긴 침묵.
그래서 네가 가장 무서울 때, 그 믿음을 이용했어.
하은은 한참 울었다.
그리고 겨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네가 도망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일곱 사람의 마지막 문장도 같았다.
우리는 네 말을 들었고,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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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뒤.
하은은 혼자 무악산온천 여관을 찾았다.
여관은 영업을 중단한 뒤였다.
건물 입구에는 출입 금지 줄이 쳐져 있었지만, 하은은 주인의 허락을 받고 203호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가구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빈 온돌방.
닫힌 창문.
활짝 열린 화장실 문.
하은은 방 한가운데에 필름 사진과 편지를 내려놓았다.
사진 속에는 여덟 명이 있었다.
그런데 서린을 제외한 일곱 명의 얼굴은 물에 젖은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맨 왼쪽에 있는 서린만 선명했다.
OK를 만든 채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
하은은 사진을 뒤집었다.
친구들이 남긴 문장 아래에 서린의 글씨가 있었다.
해동 되지 말자.
몰래카메라를 위해 바꿔놓았던 문장이 아니었다.
처음 서린이 썼던 문장이었다.
하은은 끊어진 팔찌를 사진 옆에 놓았다.
“미안해.”
목소리가 방 안에서 작게 울렸다.
“진짜 미안해, 서린아.”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콸콸.
하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울 위로 하얀 김이 서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쓴 것처럼 글씨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가지 마.
하은은 입을 막았다.
방문이 저절로 닫혔다.
찰칵.
걸쇠가 안쪽에서 잠겼다.
그 순간 하은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
겁을 먹을 때마다 조금 빨라지던, 생전의 서린과 똑같은 목소리였다.
“하은아.”
하은은 돌아보지 못했다.
“나 여기 있어.”
긴 침묵 뒤,
서린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나 이제 안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