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이야기 목록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양현역으로

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 8화

미달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3호차는 한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틈으로 저녁빛이 들어왔다.

강물 위에는 붉은 햇빛이 길게 번져 있었고, 다리 건너편의 높은 건물들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였다.

처음 영주에 올라오던 날에도 한강을 보았다.

그때 미달이는 창문 가까이 얼굴을 붙이고 생각했다.

저 건물 중 하나쯤은 자신이 일할 회사일지도 모른다고.

높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유리창이 넓은 사무실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시간이면 다른 직원들과 커피를 사러 나가는 사람.

어머니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딸.

명절에 진주로 내려갈 때면 영주에서 산 과자와 화장품을 양손 가득 들고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미달이는 회사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차 바닥에 누워 있었다.

환자복은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었고, 입가에는 말라붙은 침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코에 끼워져 있던 산소관은 한쪽이 빠진 채 뺨 위에 걸쳐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구멍 안쪽이 따갑게 긁혔다.

그나마 숨이 들어왔다.

미달이는 그것만으로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바닥 안에는 작게 접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

체험 번호 17.

이상 없음.

미달이는 손가락을 조금 더 오므렸다.

종이 모서리가 땀에 젖은 손바닥을 찔렀다.

앞자리에서는 운전기사와 이태구가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눈 뜬 것 같은데요.”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이태구가 뒤를 돌아보았다.

미달이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몸에 힘을 풀고 입을 조금 벌렸다. 죽은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지, 의식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아니야.”

이태구가 말했다.

그의 손이 미달이의 목 가까이 다가왔다.

손가락 두 개가 맥박이 뛰는 자리를 눌렀다.

미달이는 숨을 멈췄다.

“맥은 있네.”

운전기사가 말했다.

“길에서 쓰러진 사람 주웠다고 하면…….”

“신분증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데, 경찰부터 부르겠지.”

이태구가 손을 뗐다.

“조금만 더 돌자.”

“벌써 세 시간 넘었습니다.”

“약 빠지면 일어나.”

“안 일어나면요?”

이태구는 한강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양현역.”

미달이는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양현역.

사람이 없는 영주 외곽의 지하철역.

누구나 오고 갈 수 있지만 외지인이 큰 병원때문에 자주 찾아오는 곳.

그곳에 자신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신분증도 없이.

휴대전화도 없이.

박미달이라는 이름조차 없이.

지나가던 사람이 발견해 신고해도, 미달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동안 이태구는 생활관의 기록을 없애고, 시술소의 문을 닫고, 다른 이름으로 다시 사람을 모집할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미달이가 영주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신애만 미달이를 찾을 것이다.

도시락 바닥에 쓴 이름 하나를 붙잡고.

미달이는 손바닥 속 종이를 더 세게 쥐었다.

죽을 수 없었다.

적어도 이름을 되찾기 전에는.

차가 다리를 건넜다.

햇빛이 사라지며 차 안이 어두워졌다. 이태구는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접니다.”

그는 미달이 쪽을 한 번 바라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 숨은 붙어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가 무언가 말했다.

“생활관으로 다시 데려가도 되겠냐고요?”

이태구가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

“오늘은 안 됩니다. 친구라는 애가 건물까지 찾아왔어요.”

잠시 후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어디로 데려갑니까?”

미달이는 눈을 조금 떴다.

이태구는 창밖을 보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삼우 사무실은 위험하고요. 교육원도 오늘 정리해야 됩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태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언제 죽여달라고 했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효과만 보여달라고 했지.”

그는 잠시 침묵했다.

“알았습니다. 창고로 데려가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어느 창고요? 물류창고 말입니까?”

“거기 지하 비어 있잖아.”

“밤에 경비 도는데요.”

“내가 연락해놓을게.”

미달이는 속으로 그 말을 반복했다.

물류창고.

지하.

신애에게 건넨 승차권에도 아침에 물류창고를 지난다고 적었다.

신애가 그 종이를 보았다면 찾아올 수 있을까.

아니, 찾지 못하더라도 경찰에 보여줄 수 있었다.

문제는 신애가 승차권을 발견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달이는 골목 바닥에 쓰러진 신애를 떠올렸다.

그 발 가까이 떨어졌던 종이.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았을까.

이태구가 밟지는 않았을까.

신애가 끝내 보지 못했다면, 그 종이는 비에 젖어 하수구로 흘러갔을지도 몰랐다.

미달이는 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목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살았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됐다.

이태구가 자신을 다시 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생활관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죽을 수 있는 곳으로.

차가 한강변 도로를 빠져나갔다.

신호에 멈출 때마다 바깥의 소리가 들렸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오토바이 배달 상자가 흔들리는 소리.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며 내는 안내음.

길 건너 식당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

모든 소리가 너무 가까웠다.

미달이는 문 하나만 열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미달이의 시선이 차 바닥을 훑었다.

찢어진 기록지 조각들이 이태구의 구두 아래 흩어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검은색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여러 대의 휴대전화가 보였다.

투명한 비닐봉지마다 숫자가 적혀 있었다.

12.

13.

14.

미달이의 휴대전화도 저 안에 있었다.

이태구는 임상실을 정리하면서 생활관에서 가져온 휴대전화들까지 옮기는 모양이었다.

미달이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손끝이 바닥을 스쳤다.

몸이 떨릴 때마다 환자복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운전기사가 음악을 틀어놓아 작은 소리는 묻혔다.

조금만 더.

미달이의 손가락이 가방 끈에 닿았다.

그녀는 손끝으로 끈을 잡아당겼다.

가방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안에 있던 휴대전화들이 부딪혔다.

달칵.

이태구가 뒤를 돌아보았다.

미달이는 몸을 떨며 기침했다.

“컥…….”

억지로 하는 기침이 아니었다.

목 안쪽이 부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소리가 났다.

이태구가 가까이 다가왔다.

“박미달.”

미달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들려?”

대답하지 않았다.

이태구가 미달이의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일어나봐.”

미달이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아직 정신 못 차렸습니까?”

운전기사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

이태구는 미달이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미달이는 초점을 흐린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말 들려?”

미달이는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엄……마…….”

이태구가 손을 뗐다.

“헛소리하네.”

그가 다시 앞자리로 돌아갔다.

미달이는 속으로 숨을 골랐다.

이제 이태구는 미달이가 깨어나더라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차가 다시 출발했다.

미달이는 가방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지퍼 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아래로 당겼다.

지퍼가 열렸다.

휴대전화 여러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달이는 비닐봉지에 적힌 숫자 17을 찾았다.

맨 아래에 있었다.

손가락을 깊이 넣어 봉지 끝을 잡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놓쳤다.

그때 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었다.

미달이의 몸이 바닥에서 들렸다가 떨어졌다.

휴대전화 하나가 가방 밖으로 튀어나왔다.

숫자 16이 적힌 봉지였다.

16번의 휴대전화.

미달이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16번은 이미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휴대전화 안에는 이름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가족의 번호.

사진.

메시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번호가 되기 전의 삶.

미달이는 자신의 휴대전화 대신 16번의 휴대전화를 집었다.

은색 폴더폰이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자 바깥 액정에 희미한 불이 켜졌다. 배터리 표시에는 막대 하나만 남아 있었다.

미달이는 시작음이 날까 두려워 폴더폰을 환자복 안쪽으로 숨겼다.

다행히 소리는 꺼져 있었다.

폴더를 열자 작은 컬러 액정에 중년 부부와 16번이 함께 서 있는 사진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바닷가에서 웃고 있었다.

미달이는 처음으로 16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생활관에서 보았던 지친 얼굴과 전혀 달랐다.

사진 아래에 휴대전화 주인이 설정해둔 이름이 떠 있었다.

최미선

미달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최미선.

16번의 이름이었다.

미달이는 입술만 움직여 이름을 불렀다.

“최미선.”

누군가는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신애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듯, 미달이도 미선의 이름을 기억해야 했다.

휴대전화는 네 자리 잠금번호를 요구했다. 그러나 화면 아래에는 긴급전화 항목이 남아 있었다.

신고할 수 있었다.

112.

숫자 세 개만 누르면 됐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순간 소리가 날 것이었다.

자신이 깨어 있다는 사실도 들킬 것이었다.

미달이는 망설였다.

물류창고에 도착한 뒤에는 휴대전화를 빼앗길 가능성이 컸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미달이는 긴급전화 메뉴를 열어 112를 눌렀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태구가 앞자리에서 말했다.

“도착하기 전에 얘 소지품 다시 확인해.”

미달이의 몸이 굳었다.

“왜요?”

운전기사가 물었다.

“하라면 해.”

“운전 중인데 어떻게 합니까?”

“창고 들어가면.”

“알겠습니다.”

그 순간 폴더폰이 짧게 한 번 진동했다.

전원이 꺼져 있던 동안 쌓인 부재중 전화 표시와 문자들이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87통.

아빠 41통.

그리고 가장 최근에 도착한 문자 하나.

미선아. 경찰에서 연락 왔다. 네가 일했다는 곳 찾은 것 같다. 제발 전화 받아라.

미달이는 문자를 읽고 숨을 삼켰다.

경찰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이미 신고했다.

최미선의 가족일 수도 있었다.

신애일 수도 있었다.

미달이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작은 액정에 112 연결 중이라는 글자가 떴다.

신호가 한 번 울렸다.

미달이는 폴더폰을 환자복 안쪽 깊숙이 넣었다.

신호가 두 번 울렸다.

“긴급신고 112입니다.”

작은 목소리가 수화부에서 흘러나왔다.

미달이는 재빨리 몸을 웅크려 소리를 막았다.

“여보세요? 신고자분, 말씀하세요.”

미달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이태구가 들을 것이었다.

그녀는 폴더폰 옆면의 음량 단추를 눌러 소리를 가장 작게 줄였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입니까? 들리는 표지판이나 장소 이름만 말씀해주세요.”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자리의 이태구가 고개를 들었다.

운전기사가 음악 볼륨을 낮췄다.

미달이는 몸을 떨며 기침했다.

“컥…… 컥…….”

이태구가 뒤를 돌아보았다.

폴더폰은 환자복 안쪽에 있었다.

운전기사가 다시 앞을 보았다.

미달이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도로 표지판이 빠르게 지나갔다.

“서부간선도로…… 검은 승합차…… 3호차.”

숨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신애는 차량 번호판을 찍었다.

신애의 카메라폰에 남아 있을 것이다.

“허신애.”

미달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목구멍이 다시 조여왔다.

“허신애를 찾아요. 박미달이라고…….”

“지금 누구랑 얘기해?”

미달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뒤로 다가왔다.

“박미달.”

미달이는 눈을 감았다.

“방금 말했지?”

이태구가 미달이의 환자복을 뒤졌다.

손이 배와 옆구리를 훑었다.

휴대전화 모서리가 그의 손에 걸렸다.

이태구의 얼굴이 굳었다.

“이게 뭐야?”

그는 환자복 안에서 16번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112 통화가 연결돼 있었다.

“씨발.”

이태구가 통화를 끊으려 했다.

미달이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 없었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이태구가 손을 뿌리쳤다.

미달이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통화는 끊겼다.

이태구는 운전기사에게 소리쳤다.

“차 세워!”

“여기 도로 한가운데입니다!”

“아무 데나 세워!”

3호차가 급하게 차선을 바꿨다.

뒤에서 경적 소리가 이어졌다.

이태구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려 했지만 이미 전원이 꺼져 화면이 멈춰있었다.

“경찰한테 뭐라고 했어?”

그가 미달이에게 물었다.

미달이는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았다.

“다 말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이태구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뭘 다 말해?”

“생활관 주소.”

“주소도 모르잖아.”

“시술소 이름.”

“너 모르잖아.”

“16번 이름도예.”

이태구의 손이 멈췄다.

미달이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최미선.”

차 안이 조용해졌다.

이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달이가 말했다.

“실장님이 죽을 애 이름 알아서 뭐 하냐고 했던 사람.”

“그 언니 가족이 찾고 있습니다.”

이태구가 미달이의 얼굴을 내리쳤다.

미달이의 고개가 바닥에 부딪혔다.

귀 안쪽이 울렸다.

“창고로 가지 마.”

“그럼 어디로 갑니까?”

이태구는 꺼진 폴더폰을 내려다보았다.

112에는 서부간선도로와 3호차, 허신애라는 이름이 남았다. 신애의 카메라폰에 찍힌 차량 번호까지 이어지면 경찰이 물류창고를 찾아올 수도 있었다.

생활관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교육원도 정리 중이었다.

삼우인력개발 사무실에는 계약서와 장부가 남아 있었다.

이태구는 빠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달이는 그의 얼굴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죽는 일이 아니었다.

기록이 남는 일이었다.

누군가 이름을 기억하는 일.

서로 다른 장소가 하나로 이어지는 일.

“양현역으로 가.”

운전기사가 놀라 돌아보았다.

“지금요?”

“역 뒤편으로.”

“얘 살아 있잖습니까.”

“살아 있으니까 내려놓는 거야.”

“경찰에 말하면요?”

이태구가 미달이를 바라보았다.

“말 못 하게 만들면 되지.”

운전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3호차는 물류창고로 향하던 길에서 빠져나왔다.

대시보드에 붙인 거치형 내비게이션의 목적지가 바뀌었다.

목적지를 양현역으로 변경합니다.

미달이는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흔들렸다.

“양현역 가서 뭐 할 겁니까?”

이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내려놓고 도망갈 겁니까?”

“집에 가고 싶다며.”

“진주 가는 표도 끊어줄 겁니까?”

“돈 줄게. 알아서 가.”

미달이는 웃었다.

목이 부어 웃음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 말을 또 믿을 것 같습니까?”

이태구는 폴더폰의 배터리를 빼 창밖으로 던졌다.

“안 믿어도 돼.”

그는 최미선의 폴더폰을 바닥에 던지고 발뒤꿈치로 밟았다.

액정이 깨졌다.

“이제 네 말 믿어줄 사람도 없으니까.”

미달이는 깨진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미선의 웃는 얼굴이 사라졌다.

가족의 문자도.

경찰에게 이어질 수 있던 기록도.

모두 검은 화면 아래로 사라졌다.

하지만 미달이는 알고 있었다.

통화는 연결됐다.

경찰은 허신애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것이면 됐다.

점 하나가 찍혔다.

신애가 들고 있는 승차권과 이어지면 선이 될 수 있었다.

차는 양현역을 향해 달렸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영주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미달이는 차문 가까이 몸을 옮겼다.

영주의 냄새가 났다.

매연과 음식 냄새, 늦겨울 밤의 눅눅하고 찬 공기.

처음에는 설레게 했던 냄새.

차가 신호에 멈췄다.

바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

여행가방을 끄는 사람들.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가족.

미달이는 잠금장치를 끝까지 밀었다.

철컥.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문이 손가락 하나만큼 벌어졌다.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미달이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문손잡이를 밀고 몸을 던졌다.

지금 뛰어내리면 바퀴 아래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때 이태구가 백미러로 미달이를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태구가 손을 뻗어 미달의 환자복을 잡았다.

운전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크게 흔들렸다.

미달이는 남은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활짝 열렸다.

바깥의 경적 소리와 공기가 느껴진다.

미달이는 도로 위로 떨어졌다.

어깨와 등이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혔다.

끼이익.

뒤에서 달리던 차의 헤드라이트가 미달이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사람 떨어졌어요!”

“119 불러요!”

이태구는 빠르게 문을 닫았다.

3호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미달이는 도로 위에 엎드린 채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어깨에 손을 댔다.

“괜찮아요?”

“움직이지 마세요. 구급차 불렀어요.”

미달이는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 남자가 물었다.

“저 차에서 떨어진 거 맞아요?”

미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당한 거예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경찰에 차량 번호를 불러주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찢어진 환자복 위에 덮어주었다.

미달이는 도로 가장자리에 누운 채 역사 건물이 보였다.

마치 새가 된 듯 입구로 비행하여 빨려 들어갔다.

커다란 전광판에 열차 시간이 떠 있었다.

부산.

대전.

동대구.

진주로 가는 열차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신애에게 갈 수 있었다.

미달이는 눈을 감았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달아?”

너무 익숙해서 꿈이라고 생각했다.

“박미달!”

미달이는 눈을 떴다.

사람들을 밀치며 신애가 달려오고 있었다.

한쪽 무릎에는 골목에서 넘어졌을 때 생긴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을 쥐고 있었다.

진주에서 영주로 올라올 때 미달이가 탔던 고속버스 승차권.

뒷면에는 미달이가 적은 글씨가 있었다.

청운생활관.

강남 지하 시술소.

허신애에게.

신애는 미달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찾았다.”

울음에 젖은 목소리였다.

“니가 던진 거, 내가 찾았다.”

미달이는 손을 들어 신애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신애가 대신 미달이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에 댔다.

“미안하다.”

미달이가 간신히 말했다.

“뭐가 미안해.”

“내 니 말 안 들어가…….”

“말하지 마.”

“좋은 회사라 캤는데.”

미달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나도 안 좋더라.”

신애는 미달이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알아.”

“영주도 별거 없더라.”

“응.”

“집에 가고 싶다.”

“가자.”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부터 가자.”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들렸다.

미달이는 처음으로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신애가 자신을 찾았다.

경찰도 올 것이다.

생활관에 있는 여자들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구는 잡힐 것이다.

이제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깨어날 때마다 신애가 있었다.

손을 잡고 있었고,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다.

“박미달.”

미달이가 눈을 뜨면 신애가 다시 말했다.

“아름다울 미에 통달할 달.”

미달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구급차가 응급실 입구에 도착했다.

의료진이 미달이를 안으로 옮겼다. 신애는 출입문 앞에서 멈춰야 했다.

“보호자분은 밖에서 기다리세요.”

“저 친구인데요.”

“처치 끝나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미달이는 멀어지는 신애를 보며 손을 뻗었다.

“신애야.”

“여기 있을게!”

신애가 외쳤다.

“안 가고 기다릴게!”

응급실 문이 닫혔다.

의료진은 미달이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어떤 약물을 투여받았어요?”

미달이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맞았어요?”

의료진이 미달이의 몸에 남은 주사 자국과 멍을 확인했다.

"맞으면 한 번. 틀리면 두 번. 눈으로 대답할 수 있으면 해주세요."

“투여받은 장소가 병원이었어요?”

깜빡깜빡.

갑자기 가슴 깊숙한 곳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삐.

삐.

삐.

미달이의 손이 침대 난간을 붙잡았다.

의료진이 소리쳤다.

“혈압 떨어집니다!”

“아나필락시스 재발 가능성 있어요. 약 준비해요!”

사람들이 미달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산소마스크 안쪽에 입김이 하얗게 찼다.

응급실 천장의 불빛이 흔들렸다.

미달이는 눈을 감지 않으려 애썼다.

문밖에는 신애가 있었다.

경찰도 왔다.

증거도 남았다.

이번에는 병원이었다.

이번에는 누군가 119를 막지 않았다.

그러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간호사가 미달이의 환자복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조각 하나를 꺼냈다.

종이에는 검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체험 번호 17.

이상 없음.

미달이는 그것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내 이름…….”

“네?”

“박미달. 번호 아입니다.”

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빨라졌다.

미달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다.

그 순간 응급실 문밖에서 신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모르는 번호였다.

신애는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태구였다.

“미달이 살아 있어?”

신애의 얼굴이 굳었다.

“너 지금 어디야?”

“곧 죽을 거야.”

신애는 폴더폰 옆면의 통화녹음 단축키를 눌렀다.

“무슨 말이야?”

이태구가 웃었다.

“그년한테 들어간 약이 뭔지 아무도 모르잖아.”

응급실 안에서 경고음이 길게 울렸다.

삐――.

신애가 문 쪽을 돌아보았다.

의료진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애가 응급실 문으로 달려갔다.

이태구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이어졌다.

“살리고 싶으면 경찰한테 신고 취소하고 찾지 말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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