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이야기 목록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목적지 잃은 승차권

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 6화

새벽 네 시 오십 분.

종이 울리기 전, 관리자가 미달이의 방을 열었다.

철컥.

복도 불빛이 어두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왔다.

“17번. 일어나요.”

미달이는 눈을 뜨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란 도시락을 품에 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터였다.

“기상 시간 다섯 시 아닙니까?”

“오늘은 먼저 나가야 해요.”

“어디로예?”

“준비나 해요.”

관리자는 침대 옆에 서서 미달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미달이는 이불 속에서 도시락을 천천히 등 뒤로 밀어 넣었다. 승차권은 도시락 바닥에 숨겨져 있었다.

그것만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밥은 먹고 갑니까?”

“차에서 줘요.”

“하루 두 끼 준다면서예.”

“나가서 준다고 했잖아요.”

“어제는 아침, 저녁이라 안 했습니까?”

관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답 꼬박꼬박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미달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팔 안쪽에는 전날 맞은 주사 자국이 검붉게 남아 있었다. 손을 바닥에 짚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직도 약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발을 디디자 방바닥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어지럽습니다.”

“잠이 덜 깨서 그래요.”

“어제 넣은 약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17번.”

관리자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질문하지 마요.”

미달이는 관리자를 바라보았다.

“세 번째 셔틀 태운다 캤지예.”

관리자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엿들었어요?”

“어디로 갑니까?”

“일하러 가요.”

“16번 언니도 일하러 갔습니까?”

“그 사람은 퇴소했다고 했잖아요.”

“짐도 다 두고 퇴소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관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달이의 사물함을 열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하나씩 꺼내 바닥에 던졌다.

“뭐 하십니까?”

미달이가 다가가자 관리자가 손으로 밀어냈다.

“소지품 검사예요.”

“어제도 했잖습니까.”

“규칙 위반자는 매일 합니다.”

관리자의 손이 베개 밑으로 들어갔다.

미달이의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다.

관리자는 노란 도시락을 꺼냈다.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요?”

미달이가 곧바로 도시락을 빼앗았다.

“제 겁니다.”

“개인 용기 반입 금지라고 했죠.”

“빈 통이라 안 했습니까.”

“그럼 열어봐요.”

미달이는 도시락을 가슴에 붙였다.

관리자의 시선이 뚜껑 위 글씨로 향했다.

박미달.

잃어버리면 허신애에게 연락할 것.

“허신애가 누구예요?”

“모릅니다.”

“친구 아니에요?”

“아입니다.”

“그런데 왜 연락하라고 적혀 있어요?”

“중고로 받은 깁니다.”

관리자가 손을 내밀었다.

“열어요.”

미달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도시락 바닥에는 승차권이 있었다.

청운생활관과 지하 시술소에 관한 단서가 적힌 유일한 종이였다.

“먹을 거 들었나 확인만 할게요.”

“빈 통이라니까예.”

“그럼 열면 되잖아요.”

관리자가 도시락을 잡아당겼다.

미달이는 두 손으로 버텼다.

“놓으이소.”

“내놔요.”

“제 물건이라 안 합니까!”

두 사람이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하는 동안 방 안의 여자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그러나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뚜껑이 반쯤 벌어졌다.

미달이는 재빨리 몸을 돌려 도시락을 끌어안았다.

“그만하이소!”

고함이 좁은 방 안에 울렸다.

관리자가 미달이의 뺨을 때렸다.

짝.

미달이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픈 쪽 얼굴을 맞은 탓에 뺨 안쪽에서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입 안에서는 익숙한 쇠 맛이 났다.

미달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관리자는 자신이 때렸다는 사실보다 미달이가 여전히 도시락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 얼굴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말을 안 듣네.”

미달이는 입술에 묻은 피를 혀로 훑었다.

“내 이름을 안 부르고 숫자로 부르는 사람이.”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와 말을 들어야 되는데예?”

관리자의 얼굴이 굳었다.

방 안의 여자들이 숨을 죽였다.

미달이는 도시락을 등 뒤로 숨겼다.

“박미달입니다.”

“입 다물어요.”

“미달할 때 미달도 아입니다.”

관리자가 미달이의 팔을 잡았다.

“조용히 하고 내려가요.”

“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알았으니까 내려가라고!”

“아름다울 미에 통달할 달.”

미달이는 끌려가면서도 말했다.

“내 이름 박미달이라고예.”

관리자는 미달이를 복도로 밀어냈다.

방문이 닫혔다.

안에 있던 여자들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이 닫히기 직전, 위층 침대에 누워 있던 여자 하나가 아주 작게 입술을 움직였다.

박미달.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사실만으로 미달이는 울고 싶어졌다.

1층 현관 앞에는 작은 승합차가 서 있었다.

평소 번호순으로 타던 셔틀버스가 아니었다. 창문이 검게 칠해진 흰색 승합차였다.

운전석에는 이태구 실장이 앉아 있었다.

미달이는 걸음을 멈췄다.

“실장님.”

이태구가 창문을 내렸다.

“타.”

“어디 갑니까?”

“좋은 데.”

“16번 언니도 그 좋은 데 보냈습니까?”

이태구는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뱉었다.

“누구?”

“16번 말입니다.”

“번호만 듣고 내가 어떻게 알아.”

“실장님이 어제 정리했다 안 했습니까?”

관리자가 미달이의 등을 밀었다.

“빨리 타요.”

미달이는 승합차 문을 붙잡았다.

“신애한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이소.”

이태구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신애가 누군데?”

관리자가 미달이의 팔을 잡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달이는 넘어지면서도 도시락을 놓지 않았다.

“그 통은 뭐야?”

이태구가 물었다.

“밥 준다면서예.”

미달이는 도시락을 무릎 위에 올렸다.

“주는 밥 기다리다가 굶어 죽을까 봐 챙겼습니다.”

차문이 닫혔다.

잠금장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이태구는 출발하지 않았다.

차 안에 앉아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했다.

“예. 지금 데리고 나가려고요.”

잠시 뒤 그가 생활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아침에 사람이 찾아올 수도 있답니까?”

미달이는 고개를 들었다.

이태구가 백미러를 통해 미달이를 바라보았다.

“누구한테 주소 알려줬어?”

“주소도 모르는데 누구한테 알려줍니까?”

“그럼 어떻게 찾아와?”

“누가예?”

이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화를 끊은 뒤 차에서 내렸다.

“잠깐 기다려.”

미달이는 차문 손잡이를 당겼다.

열리지 않았다.

이태구와 관리자는 생활관 입구 옆에 서서 무언가를 의논했다.

미달이는 도시락을 열었다.

바닥에 숨긴 승차권이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승차권을 꺼내 손안에 쥐었다.

밖으로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조수석 창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미달이는 창문을 향해 앞자리로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생활관 골목 입구에 노란색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미달이의 손이 굳었다.

택시에서 여자가 내렸다.

검은색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다른 손에는 천가방을 들고 있었다.

허신애였다.

미달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신애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신애는 택시 기사에게 무언가를 확인한 뒤 회색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PC방에서 출력해온 건물 사진과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둔 차량 번호를 번갈아 보았다.

미달이는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쿵.

소리가 너무 작았다.

“신애야!”

검은 유리가 목소리를 삼켰다.

미달이는 주먹으로 더 세게 창문을 쳤다.

쿵.

쿵.

쿵.

신애가 고개를 들었다.

승합차 쪽을 바라보았다.

미달이는 두 손을 창문에 붙였다.

그러나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신애는 잠시 차를 바라보다 생활관 현관으로 향했다.

이태구가 앞을 막았다.

“누구 찾아왔어요?”

“박미달이요.”

미달이는 창문에 귀를 댔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들을 수 있었다.

“여기 그런 사람 없는데.”

“어제 이 건물로 들어오는 차를 찾았어요.”

신애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차량 번호도 확인했고요.”

이태구가 웃었다.

“탐정이에요?”

“미달이 어디 있어요?”

“나는 모르겠는데.”

이태구의 웃음이 사라졌다.

“실장님이 미달이 찍은 메시지랑 사진 다 가지고 있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관리자가 생활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태구는 신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신고했으면 경찰 기다리지, 왜 혼자 왔어요?”

“미달이 데리고 가려고 왔어요.”

“여기 없다니까.”

“그럼 안에 확인하게 해주세요.”

“남의 회사 숙소에 마음대로 들어가겠다고?”

“숙소면 간판도 있어야 되고, 사람을 밖에서 가두지는 말아야죠.”

“누가 가뒀다는 건데?”

“창문이 다 막혀 있잖아요.”

이태구는 신애를 오래 바라보았다.

“미달 씨가 뭐라고 했어요?”

“그걸 왜 묻는데요?”

“둘이 싸웠다던데.”

미달이의 표정이 굳었다.

이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달 씨가 친구랑 살기 싫다고 직접 여기 들어왔어요. 자꾸 간섭해서 힘들다고 하던데.”

신애의 얼굴이 흔들렸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미달 씨가 그랬어요. 자기를 무시하고, 애 취급하고, 계속 얹혀산다고 눈치 준다고.”

“내가 언제…….”

신애는 말을 멈췄다.

미달이는 창문을 두드렸다.

“아이다!”

주먹이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다.

“신애야, 아이다!”

이태구는 차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듯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미달이는 곧바로 몸을 낮췄다.

“저 차에는 누가 있어요?”

신애가 물었다.

“빈 차예요.”

“방금 소리 났잖아요.”

신애가 차 쪽으로 다가왔다.

미달이는 다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두드렸다.

쿵.

신애가 걸음을 멈췄다.

“미달아?”

미달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신애야!”

신애가 승합차로 달려왔다.

“박미달!”

그녀가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달아, 안에 있어?”

미달이는 창문 안쪽에 두 손을 붙였다.

밖에서는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을지 몰랐다.

그래도 힘껏 외쳤다.

“내 여기 있다!”

이태구가 신애의 팔을 잡아당겼다.

“남의 차에 뭐 하는 짓이야?”

“놓으세요!”

신애가 팔을 뿌리쳤다.

“미달이 안에 있잖아요!”

“증거 있어?”

“방금 대답했잖아!”

“나한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이 미친 새끼야, 문 열라고!”

신애가 다시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태구는 신애를 차에서 떼어냈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미달이는 조수석 창문 틈으로 승차권을 밀었다.

종이가 차체를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승차권은 승합차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신애의 발 가까이에 떨어졌다.

미달이는 숨을 삼켰다.

“신애야, 밑에!”

그러나 신애는 이태구와 몸싸움을 하느라 보지 못했다.

골목 입구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태구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관리자가 건물 안에서 뛰어나왔다.

“실장님.”

“문 다 열어.”

“예?”

“애들 휴대전화 돌려주고. 빨리.”

관리자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태구는 신애에게서 손을 거뒀다.

“경찰 오면 같이 확인해봅시다. 진짜 여기 없으니까.”

그는 태연한 척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경찰차가 골목 입구에서 방향을 트는 순간, 이태구는 운전석에 올라탔다.

“어디 가요?”

신애가 차 앞을 막았다.

“차 빼야 경찰 들어오지.”

“문부터 열어요.”

“비켜.”

신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태구가 경적을 울렸다.

빵.

좁은 골목에 소리가 울렸다.

신애는 차 앞에 선 채 카메라폰을 들어 차량 번호판을 찍었다.

이태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생활관 쪽에서 관리자가 소리쳤다.

“경찰 아니에요!”

골목 입구로 들어온 것은 경찰차가 아니었다.

오래된 흰색 승용차였다.

차량 지붕에 달린 붉고 푸른 불빛은 장난감처럼 작았다. 건물 방범업체 차량이었다.

신애 역시 자신이 기다렸던 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이태구는 승합차를 앞으로 움직였다.

신애가 물러서지 않자 차가 그녀의 무릎 앞에서 멈췄다.

“안 비키면 친다.”

이태구가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쳐봐요.”

신애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여기서 다치면 진짜 경찰이 올 테니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미달이는 도시락을 집어 창문을 세게 내리쳤다.

쿵.

플라스틱 뚜껑에 금이 갔다.

다시 한 번.

쿵.

뚜껑이 열리며 빈 도시락이 차 바닥에 떨어졌다.

신애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달아?”

미달이는 도시락 바닥을 창문에 붙였다.

그곳에는 신애가 직접 쓴 글씨가 있었다.

밖에서는 거꾸로 보일 것이었다.

그래도 검은 유리 가까이 다가가면 노란색 통의 윤곽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신애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도시락…….”

그 순간 이태구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승합차가 신애의 옆을 스치듯 빠져나갔다.

신애는 사이드미러를 피하다 바닥에 넘어졌다.

“신애야!”

미달이는 뒷창문으로 달려갔다.

신애가 바닥에 한쪽 손을 짚은 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미달이는 뒷유리에 두 손을 대고 신애를 바라보았다.

“박미달!”

목소리가 멀어졌다.

미달이는 입김으로 차창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썼다.

신애야.

한 글자씩 쓰는 동안 차가 점점 속도를 높였다.

미달이는 그 아래에 다시 적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마지막 글자를 쓰기 전에 입김이 말라 글씨가 사라졌다.

이태구가 백미러로 미달이를 노려보았다.

“네가 불렀지?”

미달이는 뒷좌석 끝에 웅크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소도 모른다면서 어떻게 찾아왔냐고.”

“신애는 영주 오래 살았습니다.”

미달이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니 같은 인간 찾는 법도 알겠지예.”

이태구가 운전대를 세게 내리쳤다.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야.”

“내도 아입니다.”

“네 친구가 계속 설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미달이가 앞자리로 몸을 숙였다.

“신애한테 손대지 마이소.”

“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내가 시키는 거 다 하겠습니다.”

미달이는 이를 악물었다.

“신애는 건드리지 마이소.”

이태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미달이는 그 침묵이 거래가 성립됐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는 큰길로 접어들었다.

영주의 아침이 창문 밖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미달이는 바닥에 떨어진 도시락을 주웠다.

뚜껑 한쪽이 깨져 있었다.

승차권도 창밖으로 던지고 없었다.

신애의 발밑으로 제대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달이는 깨진 뚜껑을 가슴에 안았다.

“어디 갑니까?”

이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째 셔틀은 병원에 안 간다면서예.”

“누가 그래?”

“16번 침대 밑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태구의 손이 운전대 위에서 멈췄다.

“뭐라고 적혀 있었어?”

미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미달.”

그가 처음으로 미달이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질수록 미달이는 더 무서웠다.

“뭐라고 적혀 있었냐고.”

미달이는 깨진 도시락 뚜껑을 손으로 꽉 쥐었다.

“실장님.”

“말해.”

“16번 언니 이름은 뭡니까?”

이태구가 웃었다.

“죽을 애 이름을 알아서 뭐 하게?”

미달이의 숨이 멎었다.

차 안에는 엔진 소리만 남았다.

“죽었습니까?”

이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16번 언니 죽었냐고예.”

“너는 네 걱정이나 해.”

차가 지하도로 들어갔다.

바깥의 아침 햇빛이 사라지고 주황색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차 안을 훑고 지나갔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이태구가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지금 데려갑니다.”

미달이는 몸을 굳힌 채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신규 제품이라고 했죠?”

잠시 뒤 이태구가 백미러로 미달이를 바라보았다.

“반응이 좀 있었는데, 그래도 젊어서 버틸 겁니다.”

미달이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적힌 숫자 17은 땀에 번져 형체가 흐려져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끝내면 보내주시는 겁니까?”

미달이가 물었다.

이태구는 통화를 끊지 않은 채 웃었다.

“그래.”

처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오늘만.

이번 한 번만.

끝나면 보내주겠다.

미달이는 더 이상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시 물었다.

“진짜지예?”

“그래. 고향 가는 차비도 줄게.”

그 순간 이태구의 휴대전화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번 애처럼 쇼크 오면 어떡해요?”

이태구는 미달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세 번째 차를 미리 대기시켜놔.”

통화가 끝났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미달이의 얼굴 위로 아침 햇빛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보는 밝은 빛이었다.

그 빛 아래에서 미달이는 깨진 노란 도시락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승합차가 멈춘 곳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미용기술교육원.

간판 아래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신제품 임상 체험실.

건물 뒤편에는 검은 셔틀버스 한 대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앞유리 안쪽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3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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