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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과정

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 3화

아침 다섯 시 반,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미달이는 눈을 떴다.

오른쪽 뺨이 뜨거웠다.

밤새 열이 오른 얼굴은 베개에 닿은 부분까지 퉁퉁 부어 있었다. 눈을 완전히 뜨기도 힘들었고, 턱을 움직이면 귀 아래쪽까지 뻐근하게 당겼다.

미달이는 건너편 이불을 바라보았다.

신애는 벽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잠든 것 같았지만 이불 밖으로 나온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미달이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어제 입었던 흰 블라우스는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목 부분에는 파운데이션 자국과 작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미달이는 그 위에 후드티를 입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으로 오른쪽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붓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화장품을 꺼내 붉은 자국 위에 파우더 팩트를 여러 번 두드렸다.

그때 뒤에서 신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덮는다고 없던 일 되는 거 아니야.”

미달이의 손이 멈췄다.

신애는 침대에 누운 채 미달이를 보고 있었다.

“깼나.”

“계속 안 잤어.”

“와.”

“네가 또 갈 것 같아서.”

미달이는 팩트 뚜껑을 닫았다.

“오늘 하루만 갔다 올게.”

“어제도 첫날만 해보는 거라며.”

“오늘은 다른 일이라 캤다.”

“그 사람 말을 아직 믿어?”

“믿는 게 아니고 돈 벌러 가는 기다.”

신애가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사진까지 몰래 찍은 사람들이야. 네 얼굴에 뭘 넣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어제 돈은 받았다.”

“팔만 원 받았다며.”

“팔만 원이 작은 돈이가?”

미달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주서 편의점 하루 종일 일해도 그만큼 못 번다.”

“병원비 나가면?”

“병원 안 가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괜찮다.”

미달이는 일부러 크게 입을 벌려 웃어 보였다.

오른쪽 입꼬리가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

신애의 표정이 굳었다.

미달이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며칠만 할 기다. 돈 좀 모을 때까지만.”

“돈 모아서 뭐 하게?”

“엄마한테 보내야지.”

“어머니가 보내달라고 했어?”

“안 보내도 된다 카는 사람이 진짜 안 필요한 줄 아나.”

미달이는 가방을 들었다.

진주에 있는 집의 냉장고는 몇 달 전부터 고장 나 있었다. 문을 닫아도 냉기가 새어나와 어머니는 끈으로 손잡이를 묶어두고 썼다.

세탁기도 탈수할 때마다 굉음을 냈다.

미달이는 영주에 올라오기 전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첫 월급을 받으면 냉장고부터 바꿔줘야지.

그 말을 어머니에게 한 적은 없었다.

말하면 또 돈 쓰지 말라고 할 것이 뻔했다.

신애가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어디 가는지는 알려줘.”

“나도 모른다.”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차 타면 알려주겠지.”

“미달아.”

“늦겠다.”

미달이가 현관문을 열려 하자 신애가 말했다.

“밥은 먹고 가.”

“시간 없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신애는 부엌으로 가 작은 노란색 보온도시락을 꺼냈다.

전날 남은 계란말이와 멸치볶음, 김치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밥 위에는 김가루로 작은 웃는 얼굴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미달이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피식 웃었다.

“얼라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고.”

“영주에서는 밥 안 먹으면 진짜 쓰러져.”

“밥도 준다 했다.”

“어제 그 회사가?”

미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애가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주는 밥 말고, 먹을 수 있는 밥을 먹어.”

미달이는 도시락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갔다 올게.”

“이상하면 바로 전화해.”

“폰부터 안 뺏기면.”

미달이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신애는 웃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 신애가 불렀다.

“박미달.”

“와.”

“영주에서 버티는 게 꼭 저런 거 참는 건 아니야.”

미달이는 잠시 신애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니는 오래 살아서 잘 알겠지만, 나는 이제 막 왔잖아.”

그리고 문을 닫았다.

새벽의 영주는 전날과 달랐다.

화려한 간판은 대부분 꺼져 있었고, 길가에는 밤새 버려진 전단지와 일회용 컵이 굴러다녔다. 술집 앞에서는 검은 봉투를 든 사람들이 바닥을 닦고 있었다.

미달이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영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였다.

검은 승합차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늦게 도착했다.

이태구 실장은 미달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화장 왜 그렇게 했어?”

“얼굴이 부어서예.”

“머리카락으로 좀 가려.”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제 처음 맞아서 그래. 오늘 일하면 금방 빠져.”

미달이는 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오늘은 주사 안 맞는 일 맞지예?”

“응. 기계 체험.”

“무슨 기계인데예?”

“가서 보면 알아.”

맞은편에는 어제의 여자들이 없었다.

대신 미달이보다 어려 보이는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썼고, 무릎 위에는 편의점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미달이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자는 미달이를 힐끗 보더니 고개만 숙였다.

이태구 실장이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얘는 12번, 미달 씨는 오늘부터 17번.”

미달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뭡니까?”

“현장 번호.”

“사람한테 번호를 와 붙입니까?”

“동명이인이 많아서 그래.”

“저 같은 이름이 또 있겠습니까.”

이태구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철을 꺼내 뒷자리로 넘겼다.

“서명해.”

“뭔데예?”

“오늘 근무 확인서.”

미달이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맨 위에는 ‘체험 제품 이상 반응에 대해 개인의 특이체질로 인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거 못 쓰겠습니다.”

“왜?”

“문제 생기면 다 제 탓이라는 말 아입니까.”

“형식적인 거야.”

“어제도 표준계약서라 카더니 사진을 몰래 찍었잖습니까.”

이태구 실장의 눈이 백미러로 미달이를 향했다.

“그 사진 덕분에 제품 많이 팔았어.”

“허락도 안 받고예?”

“회사 홍보 자료는 회사 소유야.”

“제 얼굴이 회사 겁니까?”

차 안이 조용해졌다.

운전하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렸다.

이태구 실장은 한숨을 쉬었다.

“미달 씨.”

“예.”

“어제 돈 받았지?”

“받았지예.”

“오늘도 돈 받고 싶으면 서명해.”

미달이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노란 도시락이 든 가방이 발밑에 있었다.

어머니에게 보내려던 돈이 아직 봉투째 들어 있었다.

그녀는 볼펜을 들었다.

“진짜 주사 맞는 일은 아이지예?”

“아니라고 했잖아.”

미달이는 서명했다.

박미달.

이태구 실장은 종이를 받자마자 서류철 안에 넣었다.

차가 도착한 곳은 노원구의 한 상가였다.

입구에는 ‘건강한 몸 체험 설명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안쪽 강당에는 중년 여자 수십 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기계가 놓여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원통형 장치였다.

벽면에는 자극적인 문구가 붙어 있었다.

누워만 있어도 지방 분해.

하루 30분, 체중 감량의 기적.

병원 시술 없이 건강한 몸을 되찾으세요.

미달이는 이태구 실장에게 물었다.

“제가 저기 들어갑니까?”

“응.”

“안전한 겁니까?”

“독일에서 들여온 거야.”

기계 뒤쪽에 붙은 스티커에는 중국어가 적혀 있었다.

미달이가 그것을 보자 이태구 실장이 재빨리 몸으로 가렸다.

“옷 갈아입고 나와.”

직원이 건넨 옷은 배와 다리가 드러나는 검은색 운동복이었다.

미달이는 탈의실 거울 앞에서 옷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너무 짧은데예.”

직원이 대꾸했다.

“몸 변화 보여주려면 입어야 해요.”

“사진도 찍습니까?”

“비교용으로만.”

미달이는 어제 받은 사진을 떠올렸다.

“싫습니다.”

“계약서 썼잖아요.”

직원은 문 앞에서 팔짱을 꼈다.

미달이는 결국 옷을 갈아입었다.

무대 위에 올라가자 사람들이 미달이의 몸을 훑어보았다. 누군가는 허벅지가 튼튼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배가 별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효과가 보이겠느냐고 말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은 진주에서 막 올라온 스무 살 아가씨가 직접 체험합니다.”

미달이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진주 출신이라는 말까지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행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로 살이 많이 쪘다고 하는데요.”

미달이가 작게 말했다.

“저 살 안 쪘는데예.”

진행자는 듣지 못한 척했다.

“과연 단 한 번의 체험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함께 확인해보겠습니다.”

직원들이 미달이의 허리와 허벅지에 끈을 감아 치수를 쟀다.

그다음 원통형 기계 안에 미달이를 눕혔다.

뚜껑이 닫히자 바깥 소리가 멀어졌다.

기계 안쪽은 어둡고 비좁았다.

미달이는 두 팔을 몸 옆에 붙인 채 누웠다. 천장에서 붉은 조명이 켜졌고, 기계가 낮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견딜 만했다.

몸 아래에서 따뜻한 열이 올라왔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지금 체험자분, 어떠세요?”

미달이 앞에 작은 마이크가 있었다.

“따뜻합니다.”

“아프지는 않죠?”

“예. 아직은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기계가 더 크게 진동했다.

따뜻했던 열은 곧 뜨거움으로 변했다. 허리와 허벅지에 닿은 부분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미달이는 손가락으로 기계 안쪽을 두드렸다.

“잠시만예.”

진행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체온을 높여 지방을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방식입니다.”

“좀 뜨거운데예.”

“열이 느껴지는 건 지방이 분해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많이 뜨겁습니다.”

미달이는 다시 기계를 두드렸다.

그러나 밖에서는 박수와 음악 소리가 이어졌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코와 목으로 들어왔다.

“꺼주이소.”

마이크는 꺼져 있었다.

미달이는 주먹으로 뚜껑을 두드렸다.

쿵.

쿵.

쿵.

기계가 열렸을 때 미달이의 운동복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오른쪽 뺨의 붓기는 더 심해져 있었다.

진행자는 미달이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다시 치수를 쟀다.

“무려 2센티미터가 줄었습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미달이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땀 빼서 그런 거 아입니까?”

진행자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

이태구 실장이 무대 아래에서 미달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본 미달이는 입을 다물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직접 체험해보니 어떠셨어요?”

미달이는 무대 아래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시술소에 있던 아주머니들과 같은 눈빛이었다.

불안하지만 믿고 싶은 눈빛.

“아프지 않았나요?”

미달이는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적셨다.

“조금 뜨겁기는 했는데…….”

이태구 실장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미달이는 말을 바꿨다.

“참을 만했습니다.”

“효과도 느껴지시죠?”

“예.”

“다시 체험할 의향이 있나요?”

미달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진행자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무료라면 또 하시겠죠?”

사람들이 웃었다.

미달이도 따라 웃었다.

“예. 무료라면예.”

행사가 끝난 뒤 미달이는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벗었다.

허벅지와 허리에는 기계 모양을 따라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따가웠다.

가방을 열자 노란 도시락이 보였다.

미달이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뚜껑을 열자 김가루로 만든 웃는 얼굴은 흔들려 반쯤 무너져 있었다. 계란말이는 한쪽으로 쏠렸고, 밥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래도 된장 냄새가 났다.

신애가 도시락을 싸면서 끓였던 국 냄새가 배어든 모양이었다.

미달이는 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입을 벌리자 부은 뺨이 당겼다.

아팠지만 씹었다.

두 번째 숟갈을 뜨려는 순간 탈의실 문이 열렸다.

직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지금 밥 먹을 시간 없어요.”

“행사 끝났잖아예.”

“다음 현장 가야 해요.”

“다음 현장이예?”

“오늘 일 하나만 한다는 말 못 들었어요?”

미달이는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밥만 다 먹고 가면 안 됩니까?”

“차 기다려요.”

직원이 문을 닫았다.

미달이는 밥을 두 숟갈 더 급하게 입에 넣었다.

그다음에는 마시듯 삼켰다.

두 번째 현장은 동대문의 작은 창고였다.

미달이는 오후 내내 화장품 상자를 접었다. 저녁이 되자 종로의 한 술집 앞으로 이동해 전단지를 돌렸다.

밤 열 시에는 피부관리실 청소를 했다.

바닥에 떨어진 화장솜과 빈 주사기 포장지를 치우고, 침대 시트를 갈고, 쓰레기봉투를 건물 뒤편에 내놓았다.

미달이는 어제 자신이 누웠던 침대와 똑같이 생긴 침대 앞에서 멈췄다.

흰 시트 위에는 작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빨리 치워.”

직원이 말했다.

“이런 데서 주사 놓는 거 불법 아입니까?”

직원이 미달이를 쳐다보았다.

“돈 필요해서 온 거 아니에요?”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예.”

“돈 필요한 사람은 모르는 게 많아야 오래 일해요.”

직원은 빈 주사기 포장지를 미달이 쪽으로 밀었다.

“괜히 알아보려고 하지 말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는 새벽 한 시가 넘었다.

미달이는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주저앉았다.

발바닥은 감각이 없었고, 오른쪽 뺨은 열이 나다 못해 얼얼했다. 허벅지의 붉은 자국은 옷이 스칠 때마다 쓰라렸다.

이태구 실장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오늘 많이 했으니까 이십만 원.”

미달이의 눈이 조금 밝아졌다.

“진짜예?”

“어. 열심히 했잖아.”

그는 봉투를 내밀었다.

미달이는 곧바로 안을 확인했다.

십이만 원이 들어 있었다.

“이십만 원이라 안 했습니까?”

“차량 이용료 이만 원.”

“셔틀버스 무료라면서예.”

“출퇴근 셔틀이 무료지. 현장 이동은 별도야.”

“그게 그거 아입니까?”

“그리고 의상 대여비 이만 원.”

“그 옷을 제가 달라 했습니까?”

“입었잖아.”

“나머지 사만 원은예?”

“현장 소개 수수료.”

미달이는 돈을 쥔 채 굳어 있었다.

“그라모 일을 많이 해도 떼가는 돈이 더 많아지는 거네예.”

“많이 버니까 많이 떼는 거지.”

“제가 번 돈인데 와 실장님이 떼갑니까?”

“내가 현장 연결 안 해줬으면 한 푼도 못 벌었잖아.”

“처음부터 이야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태구 실장은 의자에 기대앉았다.

“미달 씨는 돈 벌러 영주 온 거 아니야?”

“맞습니다.”

“그럼 돈을 벌어. 자꾸 계산하려고 하지 말고.”

“계산을 해야 돈이 남는지 알 거 아닙니까.”

이 실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이 처음에는 꼭 이래.”

“뭐가예?”

“영주 물정 모르면서 자기만 손해 본다고 생각해.”

미달이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받은 팔만 원과 오늘 받은 십이만 원.

이틀 동안 스무만 원을 벌었다.

분명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속대로라면 삼십만 원이어야 했다.

미달이가 입을 열었다.

“실장님.”

“왜.”

“계약서 제 것도 하나 주이소.”

“회사에 보관해야 해.”

“사진이라도 찍겠습니다.”

“보안 문서라고 했잖아.”

“제 계약선데 제가 못 보는 게 말이 됩니까?”

이태구 실장은 미달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서랍을 열었다.

미달이는 계약서를 꺼내는 줄 알았다.

그가 꺼낸 것은 미달이의 주민등록등본이었다.

“진주 본가 주소 여기 맞지?”

미달이의 목이 굳었다.

“그건 와예?”

“비상연락처 확인하려고.”

“갑자기 집 주소는 와 묻습니까?”

“일하다 잠수 타는 애들이 많아서 그래.”

“저 안 도망갑니다.”

“그러니까 문제없잖아.”

이태구 실장은 등본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내일 오전 일곱 시까지 와.”

“내일도예?”

“돈 벌어야지.”

“오전에는 병원부터 가볼랍니다.”

“병원 갔다가 현장 빠지면 대체 인력 비용 십오만 원 차감이야.”

“그런 말 계약할 때 없었잖습니까.”

“계약서에 있어.”

“계약서 보여주이소.”

“퇴근해.”

이 실장은 불을 껐다.

사무실이 어두워졌다.

미달이는 봉투를 쥔 채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거리는 조용했다.

막차는 이미 끊겼다.

택시를 타면 오늘 번 돈 중 삼만 원 가까이 써야 했다. 미달이는 지하철역 입구에 붙은 낡은 영주 시내 지도를 한참 들여다본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숙소가 있는 동네 방향을 물었다.

“걸어가면 두 시간은 넘게 걸릴 텐데요.”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미달이는 걷기 시작했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쓸렸다.

얼마 걷지 않아 뒤꿈치가 까졌고,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피인지 땀인지 알 수 없었다.

영주의 큰길은 새벽에도 밝았다.

편의점, 병원, 약국, 은행 간판이 밤새 켜져 있었다.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미달이는 편의점 앞 의자에 잠시 앉았다.

가방 안에서 노란 도시락을 꺼냈다.

남은 밥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미달이는 멸치볶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짰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울면 얼굴이 더 부을 것 같아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미달아, 자나?”

미달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이다. 이제 퇴근했다.”

“이 시간에?”

“영주 회사는 원래 야근도 쪼매 한다.”

“목소리가 와 그러노?”

“피곤해서 그렇지.”

“밥은 묵었나?”

미달이는 무릎 위의 식은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잘 챙겨준다.”

“같이 사는 아는 잘해주나?”

“신애? 잘해준다. 요리도 잘하고.”

“니도 얻어묵지만 말고 설거지라도 해라.”

“알았다.”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집 냉장고가 오늘 또 멈췄다.”

미달이는 손에 든 멸치볶음을 내려놓았다.

“아예 고장 났나?”

“아이다. 두드리니까 다시 돌아간다.”

“하나 사라.”

“멀쩡한 걸 뭘 사노.”

“그게 어딜 봐서 멀쩡하노.”

“니 첫 월급 받으면 니 옷이나 사 입어라.”

미달이는 손에 든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엄마.”

“와.”

“내 오늘 돈 받았다.”

“벌써?”

“영주는 주급으로도 준다.”

“얼마 받았는데?”

미달이는 대답하지 않고 편의점 안쪽의 현금인출기 앞으로 갔다. 어머니 계좌번호는 지갑 속 작은 수첩 맨 뒤에 적혀 있었다.

어제 받은 팔만 원과 오늘 받은 십이만 원.

합해서 스무만 원.

그중 십오만 원을 어머니 계좌로 이체했다.

“십오만 원 보냈다.”

“야가 미쳤나. 당장 취소해라.”

“취소 못 한다.”

“니 방값도 내야 될 거 아이가.”

“기숙사 공짜라 안 했나.”

“밥값은?”

“밥도 공짜다.”

“교통비는?”

미달이는 한쪽 신발 안에서 번지는 피를 느꼈다.

“셔틀버스 타고 다닌다.”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 딸 다 컸네.”

미달이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뻐근해졌다.

얼굴이 붓고, 몸에 붉은 자국이 남고, 하루 종일 굶고, 새벽길을 두 시간 넘게 걷는 일이 전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랬다.

“냉장고 사는 데 보태라.”

“이걸로 뭔 냉장고를 사노.”

“담주에 또 보내면 되지.”

“너무 무리하지 마라.”

미달이는 웃었다.

“내 영주서 좋은 회사 들어갔다니까.”

이체를 마치고 영수증을 확인하니 계좌에는 오만 원이 남아 있었다.

숙소까지 가려면 아직 한 시간 반을 더 걸어야 했다.

미달이는 노란 도시락을 다시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식탁 위의 작은 등이 켜져 있었다.

신애는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앞에는 식은 된장국과 밥 한 공기가 놓여 있었다.

미달이가 조심스럽게 지나가려 하자 신애가 눈을 떴다.

“이제 와?”

“일이 쪼매 늦게 끝났다.”

“셔틀버스는?”

“오늘은 여기까지 안 온다 카더라.”

“걸어왔어?”

“운동도 되고 좋지 뭐.”

미달이는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피에 젖은 양말이 드러났다.

신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이 왜 이래?”

“쪼매 까졌다.”

“이게 조금이야?”

신애가 미달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미달이는 발을 뒤로 뺐다.

“됐다. 피곤하다.”

“얼굴도 더 부었어. 병원 가야 해.”

“내일 갈게.”

“진짜지?”

미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애가 미달이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안에서 노란 도시락이 흔들렸다.

“밥은 먹었어?”

“다 묵었다.”

신애가 도시락을 열었다.

밥은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미달이는 들킨 아이처럼 고개를 돌렸다.

신애는 아무 말 없이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돈은 받았어?”

“응.”

“얼마?”

“많이.”

“정확히 얼마인데?”

“엄마한테 십오만 원 보냈다.”

“너 쓸 돈은?”

“또 벌면 되지.”

신애는 한동안 미달이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야.”

“뭘?”

“돈이 생기자마자 없어지게 만드는 거.”

“내가 엄마한테 보낸 기다.”

“그래서 내일도 나갈 수밖에 없잖아.”

미달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신애는 미달이의 발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굳은 피가 녹아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

“그 회사에서 네 손에 돈이 남기 시작하면 그만둘 수 있어.”

신애가 낮게 말했다.

“그러니까 절대로 안 남게 할 거야.”

미달이는 피곤한 눈으로 신애를 내려다보았다.

“니가 뭘 안다고.”

“나도 전에 비슷한 데서 일해봤어.”

미달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신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가지 마.”

“대체 인력 비용 십오만 원 내야 된다.”

“그게 말이 돼?”

“계약서에 있다 카더라.”

“계약서 봤어?”

“아니.”

“그럼 없는 거야.”

미달이는 소파에 몸을 눕혔다.

“내일 가서 확인해볼게.”

“혼자 가지 마. 나도 같이 갈게.”

“니 일은?”

“빼면 돼.”

“괜히 니까지 엮이지 마라.”

“이미 엮였어.”

신애가 노란 도시락을 들었다.

“네가 내 밥 먹었잖아.”

미달이는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해 대꾸할 힘도 없었다.

잠들기 직전, 미달이는 휴대전화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태구 실장이 보낸 문자였다.

내일 오전 7시까지. 지각 시 5만 원 차감.

곧이어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미달이가 무대 위에서 검은 운동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사진 아래에는 화려한 글씨가 붙어 있었다.

진주에서 올라온 스무 살 미달 씨도 단 한 번에 2cm 감량 성공!

미달이는 작은 액정의 확대 메뉴를 몇 번 눌렀다.

자신의 뒤편, 무대 아래에 서 있는 이태구 실장이 보였다.

그는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미달이의 가방을 열어 노란 도시락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진이 촬영된 시간은 오후 두 시 십칠 분이었다.

미달이가 기계 안에 갇혀 문을 두드리던 시간이었다.

잠시 뒤 새로운 문자가 왔다.

집밥 좋아하더라.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이어졌다.

조만간 밥이랑 방까지 다 해결되는 일로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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