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실 문 위의 붉은 불빛이 꺼진 것은 새벽 세 시가 넘어서였다.
긴 기계음이 멈춘 뒤에도 신애는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의료진이 미달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뛰어다니던 발소리가 하나씩 줄었고, 다급하게 오가던 말들도 어느 순간부터 낮아졌다.
그 고요가 무엇을 뜻하는지 신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잠시 뒤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에는 피로가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신애 앞에 서서 한동안 말을 고르지 못했다.
“보호자분께는 연락드렸습니까?”
신애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킨 뒤에야 겨우 대답했다.
“진주서 올라오고 계십니다.”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새벽 두 시 오십칠 분에 사망하셨습니다.”
신애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들었는데도 뜻이 들어오지 않았다.
박미달이라는 사람이 조금 전까지 저 문 안에 있었다.
된장국에 감자를 많이 넣어달라고 했다.
진주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아프다고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런 사람이 사망했다는 말 한마디로 없어질 수는 없었다.
“다시 해보면 안 됩니까?”
신애가 물었다.
“이미 여러 차례 심정지가 있었고…….”
“아까도 다시 돌아왔잖아요.”
“죄송합니다.”
“이름 부르면 눈 떴습니다.”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애는 응급실 문을 바라보았다.
“제가 들어가서 부르면 됩니다.”
“허신애 씨.”
“아름다울 미에 통달할 달이라고 하면 알아듣습니다.”
신애가 문으로 다가갔다.
경찰관이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의사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문이 열렸다.
응급실 안은 지나치게 밝았다.
미달이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몸에 붙어 있던 선들은 대부분 치워져 있었고, 얼굴 위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신애는 침대 가까이 걸어가 천을 천천히 내렸다.
미달이의 얼굴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처음 시술을 받은 뒤부터 제대로 움직이지 않던 오른쪽 입꼬리도 이제는 아무 방향으로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웃는 척하지 않아도 됐다.
아프지 않다고 말하지 않아도 됐다.
신애는 미달이의 손을 잡았다.
차갑기 시작한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웠다.
“박미달.”
대답이 없었다.
신애는 조금 더 크게 불렀다.
“니 이름 좋은 이름이라 캤잖아.”
미달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신애가 고개를 숙였다.
“니 내 말은 잘 들었잖아.”
웃음 같은 울음이 새어 나왔다.
“다른 사람 말은 그렇게 잘 들으면서, 와 이번에는 내 말 안 듣노.”
신애는 미달이의 손등을 자신의 이마에 댔다.
“밖에 기다린다 캤는데.”
목소리가 무너졌다.
“내 안 갔는데.”
신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응급실 안에는 미달이의 이름이 적힌 종이만 남아 있었다.
박미달. 여성. 만 20세.
그 아래에는 사망 시각이 기록돼 있었다.
번호는 없었다.
17이라는 숫자도 없었다.
그런데 신애는 그것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을 때 이름을 불러줬어야 했다.
살려달라고 했을 때 들어줬어야 했다.
아프다고 했을 때 멈췄어야 했다.
죽은 뒤에야 정확한 이름을 적는 사회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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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달이의 어머니는 해가 뜬 뒤 병원에 도착했다.
진주에서 첫차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신애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응급실 앞에 나타났을 때 신애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사진으로만 본 여자였다.
미달이와 눈매가 닮아 있었다.
어머니는 작은 여행가방 하나를 끌고 복도를 걸어왔다. 오래된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급하게 나온 듯 양말 색이 서로 달랐다.
신애를 발견한 어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허신애 맞나?”
신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 미달이 친구.”
“예.”
어머니는 신애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눈빛 안에는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어디에서 찾았는지.
왜 그런 곳에 있었는지.
왜 더 빨리 연락하지 않았는지.
정말 죽은 게 맞는지.
그러나 어머니가 처음 꺼낸 말은 전혀 달랐다.
“니도 다쳤나?”
신애는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생활관 앞에서 넘어졌을 때 생긴 상처였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바지 아래로 피가 다시 배어 나오고 있었다.
“쪼매 까졌습니다.”
“약은 발랐고?”
그 말에 신애는 고개를 숙였다.
미달이가 왜 끝까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다.
신애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애의 어깨를 만지며 물었다.
“우리 미달이 혼자 있었나?”
신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마지막에 니가 있었나?”
“예.”
“손 잡아줬고?”
“예.”
어머니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라모 됐다.”
그 한마디에 신애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안 됩니다.”
신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못 막았어요.”
“니가 우째 막노.”
“더 빨리 경찰에 갔어야 됐어요.”
“니가 찾았잖아.”
“살아서 못 데려왔잖아요.”
어머니는 울고 있는 신애를 품에 안았다.
“니가 영주서 우리 미달이 혼자 안 있게 해줬잖아.”
신애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미달이가 어머니한테 거짓말해달라 캤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신애는 경찰이 출력해준 편지 사본을 보여주었다.
혹시 엄마 만나면 내 영주서 밥 잘 묵고 살았다고 해주라.
거짓말 쪼매만 해주라.
어머니는 종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바보 같은 가시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밥 못 묵었으면 못 묵었다 카면 되지.”
손가락으로 사본 속 글씨를 따라갔다.
“엄마한테까지 안 아프다 거짓말했나.”
신애가 울면서 대답했다.
“계속 회사서 잘 챙겨 묵는다 했답니다.”
“마지막에는?”
“아프다 했습니다.”
어머니가 신애를 바라보았다.
“뭐라 캤노?”
“진짜 아팠다 캤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입술을 단단히 다물었지만 울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말했네.”
그녀는 편지 속 미달이의 이름을 쓰다듬었다.
“우리한테는 말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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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달이의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진 것은 사흘 뒤였다.
부검 결과, 미달이의 몸에서는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약물 여러 종류가 검출됐다.
CW-04라는 이름으로 불린 혼합 주사제는 허가받지 않은 성분들을 임의로 섞어 만든 것이었다. 이전 시술소에서 투여된 약물과 기계 시술로 인한 손상도 몸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사인은 약물만이 아니었다.
미달이의 복부에는 심한 둔력 손상이 있었다.
장기 일부가 손상돼 출혈이 시작됐고, 오랜 시간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으면서 상태가 악화됐다. 3호차에서 도로로 떨어질 때 생긴 상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손상이었다.
경찰은 운전기사를 다시 조사했다.
처음에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태구가 미달이의 얼굴을 한 차례 때렸고, 그 뒤 미달이가 혼자 문을 열고 뛰어내렸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3호차 앞유리에 달린 작은 차량 영상기록장치에는 영상만 남은 것이 아니었다.
운전기사가 사고에 대비해 개인적으로 달아둔 초기형 블랙박스였다. 화질은 낮았지만 차 안의 소리까지 함께 녹음됐다.
이태구는 체포되기 전 운전기사에게 메모리카드를 내놓으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겁에 질린 척 빈 예비 카드를 건넸고, 실제 녹음이 든 SD 메모리카드는 작업복 안주머니에 숨겼다. 이태구가 부순 것은 아무 기록도 없는 카드였다.
운전기사가 경찰에 제출한 카드 안에는 미달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몇 분이 남아 있었다.
112 신고 전화가 끊긴 직후였다.
3호차는 서부간선도로 갓길에 잠시 멈췄다.
낮은 화질의 블랙박스 화면에는 차 안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리가 들렸다.
차문이 열리는 소리.
이태구가 미달이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욕하는 소리.
“네가 뭔데 경찰에 전화를 해?”
미달이의 숨이 끊어지듯 이어졌다.
“신애가…….”
“아직도 그년 타령이야?”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미달이가 짧게 숨을 뱉었다.
두 번.
운전기사가 만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태구가 대답했다.
“안 죽어.”
다시 한 번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런 것들은 이렇게 해도 안 죽어.”
미달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이름…… 박미달입니다.”
그 뒤로 미달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태구가 미달이의 복부에 각목을 쑤셔넣듯 돌리며 누른 것을 보았다.
이태구는 모두 진술을 거부했다.
“병원 가면 우리가 죽어.”
“조금만 더 돌면 약 빠져.”
“죽으면 양현역에 내려.”
녹음은 이태구가 미달이의 죽음을 우연한 사고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남기고 있었다.
미달이는 약물 부작용으로 숨진 것이 아니었다.
살릴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겼다.
아프다는 말을 무시당했고, 병원으로 갈 기회를 빼앗겼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죽음의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공짜라는 말로 시작된 거짓말.
계약서라는 이름의 덫.
노동이라는 이름의 착취.
체험이라는 이름의 불법 시술.
관리라는 이름의 감금.
그리고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자신들의 기록부터 지우려 했던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박미달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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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시작되자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누군가는 다이어트 기계 안에서 화상을 입었다.
누군가는 얼굴에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누군가는 생활관에서 몇 달 동안 일하고도 오히려 빚이 늘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신고하지 못했다.
자신도 불법 시술소의 홍보에 가담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가족에게 좋은 곳에 취직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부끄러웠다.
미달이와 똑같았다.
처음 언론은 사건을 이렇게 불렀다.
‘불법 미용 체험 모델 사망 사건.’
기사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없었다.
스무 살 여성.
지방 출신 취업준비생.
청운생활관 17번.
신애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17번 아입니다.”
기자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실명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애는 이해했다.
이해하면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이름은 있습니다.”
“유족 동의가 필요합니다.”
“어머니가 동의했습니다.”
“내부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박미달입니다.”
신애는 전화를 끊기 전에 정확하게 말했다.
“아름다울 미에 통달할 달입니다.”
며칠 뒤 기사 제목이 바뀌었다.
‘영주 상경 닷새 만에 숨진 고 박미달 씨.’
처음으로 미달이의 이름이 세상에 나왔다.
다른 피해자들의 진술도 이름과 함께 기록됐다.
최미선은 살아 있었다.
3호차에서 의식을 잃은 채 영주 외곽의 작은 병원 앞에 버려졌고, 신분증이 없어 오랫동안 무연고 환자로 분류돼 있었다.
가족은 뉴스를 보고 미선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냈다.
미선은 의식을 되찾은 뒤 경찰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모두 진술했다.
진술 마지막에는 미달이에 관한 말이 적혀 있었다.
“박미달 씨가 제 이름을 물어봤습니다. 그곳에서 제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미달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이태구는 재판에서도 미달이가 자발적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고, 돈을 받고 홍보했으며, 자신은 고용 관계가 아니라 일을 소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미달이의 서명을 따라 쓰는 장면이 촬영된 교육원 영상이 재생됐다.
3호차의 녹음도 공개됐다.
“내 이름 박미달입니다.”
법정 안에 미달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울렸다.
말을 마친 뒤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태구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신애는 그것이 반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이 증거를 듣게 된 표정일 뿐이었다.
재판부가 피해자의 이름을 읽었다.
“피해자 박미달.”
한 번.
“박미달 씨가 명시적으로 거부했음에도.”
두 번.
“박미달 씨에게 필요한 구조 조치를 하지 않고.”
세 번.
“박미달 씨를 폭행하여.”
법정에서 미달이는 더 이상 17번이 아니었다.
이태구가 가장 지우고 싶어 했던 이름은 판결문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반복됐다.
재판이 끝난 뒤 운전기사가 신애와 미달이의 어머니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자필 진술서가 들어 있었다.
그는 미달이를 병원으로 데려갈 기회가 세 번 있었다고 썼다.
처음 이상 반응이 왔을 때.
3호차 안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갓길에서 이태구에게 폭행당한 뒤.
그러나 세 번 모두 이태구의 지시에 따랐다.
진술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박미달 씨는 끝까지 살려고 했습니다.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 것은 죽으려 한 행동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사실만큼은 반드시 기록해주십시오.
미달이의 어머니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우리 미달이가 지가 죽은 줄 알까 봐 걱정했다.”
신애가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혹시 지가 잘못 뛰어내려 죽었다고 생각할까 봐.”
어머니는 진술서를 가슴에 안았다.
“살려고 한 기다.”
신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한테 돌아올라꼬.”
“예.”
“끝까지 온 힘을 다 쓴 기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았다.
“그라모 됐다.”
이번에 그 말은 체념이 아니었다.
미달이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뜻도 아니었다.
딸의 마지막 선택이 절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람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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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진주에서 치렀다.
영주에서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말을 들었던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무슨 일을 당했느냐고 물었다.
누군가는 왜 그런 회사에 들어갔느냐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짧게 대답했다.
“우리 미달이가 잘못한 거 없다.”
누가 계약서에 서명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 다시 말했다.
“잘못한 거 없다.”
돈을 벌려고 위험한 일을 한 것 아니냐는 말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스무 살짜리가 일하고 밥 묵고 잘 방 준다 카는 말을 믿은 게 무슨 잘못이고.”
신애는 빈소 한쪽에 노란 도시락을 놓았다.
경찰이 수사를 위해 보관하다 돌려준 물건이었다.
뚜껑에는 금이 가 있었고, 모서리 한쪽이 깨져 있었다.
그래도 글씨는 남아 있었다.
박미달.
잃어버리면 허신애에게 연락할 것.
신애는 도시락 안에 계란말이와 멸치볶음, 흰밥을 담았다.
밥 위에는 김가루로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처음 영주에 왔던 날처럼.
장례를 마친 다음 날, 어머니는 된장국을 끓였다.
감자와 애호박을 많이 넣고, 미달이가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했던 고기도 조금 넣었다.
신애는 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맛있습니까?”
어머니가 물었다.
신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달이가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니가 끓인 게 더 맛있다 안 캤나.”
“그거 어머니한테 비밀로 해달라 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울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가시나가 끝까지 거짓말만 시키네.”
두 사람은 미달이의 밥그릇과 도시락을 마주 놓았다.
창밖에서는 진주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된장국 위로 김이 올라갔다.
그 순간 신애는 맞은편 빈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도시락 뚜껑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딸깍.
바람 때문일 수도 있었다.
식탁이 기울어 있었을 수도 있었다.
신애는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뚜껑 안쪽에 김이 서려 있었다.
그 위로 손가락으로 쓴 것 같은 자국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잘 묵었다.
신애는 눈을 깜빡였다.
글씨는 곧 김과 함께 사라졌다.
“왜 그러노?”
어머니가 물었다.
신애는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아무것도 아입니다.”
그날 밤, 신애는 미달이가 쓰던 방에서 잠들었다.
잠결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가방 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도 났다.
드르륵.
드르륵.
신애는 눈을 떴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그런데 부엌에서는 된장국 냄새가 났다.
신애는 이불을 끌어안고 아주 작게 말했다.
“미달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와.”
신애는 숨을 멈췄다.
“집에 왔나?”
한참 뒤, 대답이 들렸다.
“응.”
이번에는 진주 말씨가 아니었다.
영주에서 지내는 동안 조금씩 섞여버린, 미달이만의 어색한 말투였다.
신애는 방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불 속에서 미달이에게 말했다.
“된장국 데워줄까?”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짧게.
그리고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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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역 뒤편 도로에서는 그 뒤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비 오는 날 늦은 밤이면 흰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진주로 가는 차를 묻는다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한쪽 손에 금이 간 노란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진주까지는 너무 멀다고 하면 고개를 숙였고, 영주고속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면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요금을 낼 돈이 없다며 주머니를 뒤졌다.
기사가 그냥 태워주겠다고 뒤를 돌아보면 뒷좌석은 비어 있었다.
그 소문은 이태구의 판결이 확정된 뒤부터 조금씩 줄어들었다.
3호차의 블랙박스 녹음이 공개되고, 미달이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이 판결문에 기록된 뒤였다.
마지막으로 여자를 봤다는 사람은 고속터미널 청소부였다.
새벽 첫차가 움직이기 전, 역 뒤편 벤치에 젊은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노란 도시락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터미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부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 이 시간부터 나왔어요?”
여자가 대답했다.
“진주예.”
“표는 끊었어요?”
여자는 손에 든 승차권을 보여주었다.
오래전에 만료된 표였다.
청소부가 새 표를 끊어야 한다고 알려주자 여자는 잠시 고민했다.
“돈이 없는데예.”
“가족한테 전화해봐요.”
“전화 없어도 됩니다.”
“그럼 기다리는 사람은 알고 있어요?”
그 질문에 여자가 웃었다.
“예.”
처음 영주에 올라온 사람처럼 설레는 얼굴이었다.
“내 이름 아는 사람이 기다립니다.”
청소부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보았을 때,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벤치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자국은 역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영주를 벗어나는 도로 쪽으로 이어지다가, 아침 햇빛 속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양현역에서는 노란 도시락을 든 여자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박미달은 끝내 영주에 남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