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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상경

박미달전: 집으로 가는 길 · 1화

기숙사 무료 제공. 하루 두 끼 식사 제공.
셔틀버스 운영.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돈은 좀 아쉽지만 집도 밥도 준다고.

“엄마, 영주 물가가 얼매나 비싼데. 월급 쪼매 작아도 방값 안 들고 밥값 안 들면 이게 더 남는 기다.”

미달이는 전화를 어깨와 뺨 사이에 끼운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속버스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버스 앞쪽 천장에 매달린 작은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한미 FTA 7차 협상이 끝났지만 자동차와 농업 분야의 쟁점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미달이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회색빛 강물이 길게 펼쳐졌고, 그 뒤편에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유리로 된 건물마다 오후 햇빛이 부서져 반짝였다.

미달이는 자신도 모르게 창문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영주였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열흘 만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전문대에 진학하거나 아는 사람의 소개로 공장과 병원에 취직했다. 미달이도 어머니가 소개해준 농협 계약직 자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싫었다.

한 번쯤은 진주를 벗어나보고 싶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시내버스, 길을 걷다 보면 꼭 마주치는 고등학교 동창, 딸기 철이면 온 동네에 퍼지는 달고 축축한 냄새까지. 미달이는 그 모든 것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별개였다.

영주에 가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는 이름 때문에 놀림받지 않아도 되고, 어머니가 누구인지, 고등학교 때 성적이 어땠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밥은 제때 챙기 묵고. 이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고.”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얼라가. 스무 살이다, 스무 살.”

“스무 살이면 뭐 하노. 니는 아직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

“걱정 마라. 내 진짜 열심히 해가 돈 많이 벌어 보낼게.”

“돈 보내지 마라. 니 쓸 거나 챙기라.”

“아이고, 됐다. 엄마는 나중에 내가 영주 구경시켜줄라 카면 좋은 신발이나 하나 사놔라.”

미달이는 일부러 씩씩하게 웃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도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끝난 뒤 잠깐의 침묵이 남았다.

“미달아.”

“와.”

“힘들면 그냥 내려와도 된다.”

미달이는 한강 너머의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하나쯤은 자신이 일할 회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려갈 일이 뭐 있노. 내 영주 가 체질일 수도 있다 아이가.”

전화를 끊은 뒤 미달이는 검게 꺼진 은색 폴더폰의 액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아침 일찍 드라이기로 편 머리는 벌써 조금 부풀어 있었고, 입술에는 휴게소 화장실에서 급히 바른 분홍 립글로스가 얼룩져 있었다.

그래도 웃어보았다.

영주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고속터미널에서 내리자 세상이 갑자기 빨라졌다.

사람들은 모두 목적지가 있는 얼굴로 걸었다.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손에는 커피를 들고, 누군가를 피해 몸을 틀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미달이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며 그 틈에 섞였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는 교통카드를 어디에 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췄다. 뒤에 있던 남자가 한숨을 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잠시만예.”

남자는 미달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옆 개찰구로 지나갔다.

미달이는 입술을 삐죽였다.

“영주 사람들은 와 이리 급하노.”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니 오히려 웃음이 났다.

길을 두 번 잘못 들고, 계단 앞에서 무거운 가방을 낑낑거리다가도 미달이는 기분이 좋았다. 지하철 노선도는 복잡했지만 알록달록했고, 역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이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 낯섦이 좋았다.

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기 시작한 뒤였다.

역 밖으로 나오자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고깃집, 노래방, 부동산, 술집, 휴대전화 판매점이 좁은 길 양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미달이는 여행가방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와.”

영주의 밤은 진주의 낮보다 훨씬 밝았다.

밤인데도 모두가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미달이가 머물 방은 역에서 십오 분쯤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다. 채용 공고에 적혀 있던 기숙사가 입사일까지 비어 있지 않아, 며칠 동안만 임시 숙소를 써야 한다고 했다.

건물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오래돼 보였다.

회색 벽에는 빗물이 흐른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고, 반지하 창문 앞에는 녹슨 자전거와 빈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미달이는 문자로 받은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을 열었다.

“계세요?”

안쪽에서 프라이팬에 무언가 볶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대충 묶었고, 한 손에는 나무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박미달?”

“맞는데.”

“들어와. 거기 신발장 좁으니까 캐리어는 안쪽에 놓고.”

여자의 이름은 허신애였다.

미달이와 같은 스무 살이었지만 자취는 중학생 때부터 했다고 했다. 부모가 지방을 오가며 일해 신애는 친척집과 원룸을 옮겨 다니며 컸다.

그래서인지 신애는 손이 빨랐다.

미달이가 짐을 푸는 동안 프라이팬에 김치와 참치를 볶고, 냄비에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은 오이를 썰어 무쳤다.

좁은 방 안에 된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퍼졌다.

“니가 이거 다 한 기가?”

미달이가 물었다.

“응. 대충.”

“대충이 이 정도면 작정하고 하면 잔칫상 차리겠네.”

“말 놓는다?”

“동갑인데 뭘. 내도 미달이라 캐라.”

신애는 접이식 탁자 위에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이름이 진짜 미달이야?”

미달이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신애를 바라보았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뒤에 따라오는 말은 늘 비슷했다.

뭐가 모자라서 미달이냐.

시험을 맨날 미달했느냐.

태어날 때 몸무게가 미달이었느냐.

“아름다울 미에 통달할 달이다.”

미달이는 먼저 방어하듯 말했다.

“미달할 때 미달 아이다.”

신애는 잠시 미달이를 쳐다보았다.

“좋은 이름인데?”

미달이가 눈을 깜빡였다.

“뭐가?”

“아름다움을 통달하라는 거잖아. 이름대로 살면 멋있겠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미달이는 괜히 밥을 크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니 된장찌개 잘 끓이네.”

“맛있어?”

“우리 엄마 거보다 쪼매 맛있다.”

“그건 어머니한테 비밀로 해.”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

신애는 영주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늦은 밤에는 이어폰을 양쪽 다 끼지 말 것. 원룸을 보러 갈 때는 혼자 가지 말 것. 월급을 지나치게 많이 준다는 곳은 일단 의심할 것.

미달이는 된장찌개 국물을 떠먹으며 웃었다.

“내 회사는 괜찮다. 기숙사도 공짜고 하루 두 끼 밥도 준다.”

“무슨 회사인데?”

“생활용품 홍보하고 고객 관리하는 회사라 카던데.”

“회사 이름은?”

미달이는 가방에서 PC방 프린터로 뽑아온 채용 공고 한 장을 꺼냈다.

삼우인력개발.

공고에는 웃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서 있었다. 그 뒤로는 반짝이는 사무실과 새하얀 셔틀버스가 보였다.

신애는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인력개발이면 회사에 직접 취직하는 건 아니지 않아?”

“실장이 내 보고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 했다.”

“계약서는 썼어?”

“내일 쓴다.”

“잘 읽고 써. 사진도 찍어놓고.”

미달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공고에 적힌 조건은 좋았다.

기숙사가 무료였다.

밥도 줬다.

셔틀버스도 다녔다.

무엇보다 영주에서 자신을 받아준 첫 번째 회사였다.

다음 날 미달이는 새로 산 흰 블라우스를 입었다.

신애가 빌려준 고데기로 머리를 정리하고, 거울 앞에서 옷깃을 몇 번이나 만졌다. 가방 안에는 이력서와 통장 사본, 주민등록등본을 가지런히 넣었다.

“어떠노?”

미달이가 한 바퀴 돌자 신애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영주 사람 같다.”

그 말이 미달이의 마음에 쏙 들었다.

“갔다 오께.”

“이상하면 바로 전화해.”

“뭐가 이상하노. 첫 출근인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미달이는 웃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삼우인력개발은 구로동의 오래된 상가 건물 4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 있었다. 미달이는 계단을 오르며 층마다 붙은 간판을 읽었다.

철학관.

대출 상담소.

성인용품점.

삼우인력개발.

사무실 문에는 유리 대신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미달이가 문을 열자 담배 냄새와 믹스커피 냄새가 섞여 나왔다. 안에는 책상 세 개와 검은색 소파, 날짜가 지난해에 멈춰 있는 달력이 있었다.

미달이는 자신이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저기, 오늘 출근하기로 한 박미달인데예.”

안쪽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마흔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겼고, 손목에는 번쩍이는 금색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가 이태구 실장이었다.

“진주에서 온 미달 씨?”

“예.”

“멀리서 왔네. 앉아요.”

이 실장은 미달이의 이력서를 천천히 읽었다.

“스무 살. 경력 없음. 자격증도 없고.”

그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미달이는 블라우스 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배우라 카시면 열심히 배울 수 있습니다.”

“지방 친구들이 성실하긴 하지.”

이 실장이 웃었다.

“영주 애들은 조금만 힘들면 도망가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악착같이 버티거든.”

칭찬처럼 들렸다.

미달이는 허리를 조금 더 곧게 폈다.

“오늘은 교육부터 받으면 되나요?”

“교육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일단 현장 한번 가봅시다.”

“사무실에서 고객 관리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고객을 알아야 관리도 하지.”

이 실장은 서랍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여러 장이었지만 글씨가 작았다. 미달이가 첫 장부터 읽으려 하자 이 실장은 마지막 장을 펼쳐 서명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다른 직원들도 다 똑같이 쓰는 표준계약서예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보고…….”

“오늘 현장 예약 시간이 있어서 그래. 차에서 읽어도 돼요.”

이 실장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재촉하는 힘이 있었다.

미달이는 잠시 신애의 말을 떠올렸다.

잘 읽고 써.

사진도 찍어놓고.

그러나 첫날부터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영주에서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고 들었다.

미달이는 계약서 아래에 이름을 썼다.

박미달.

이 실장은 서명된 계약서를 곧바로 파일 안에 넣었다.

“휴대전화도 주세요.”

“휴대전화는 와예?”

“현장에서 사진 찍으면 안 되거든. 보안 때문에 맡겨야 해요.”

미달이는 조금 망설이다 휴대전화를 건넸다.

이 실장이 검은 승합차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차 안에는 미달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창밖만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긴소매 옷으로 손등까지 가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미달이가 인사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실장은 미달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오늘은 쉬운 일이니까.”

“무슨 일인데예?”

“예뻐지고 싶어 하는 아주머니들한테 제품 효과만 보여주면 돼.”

“제가 제품을 파는 겁니까?”

“아니. 미달 씨가 직접 써보는 거야.”

승합차 문이 닫혔다.

바깥의 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미달이는 검게 선팅된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정성껏 편 머리와 흰 블라우스가 어두운 유리 위에 희미하게 떠 있었다.

차가 출발했다.

미달이는 무릎 위에 두 손을 얌전히 올렸다.

설렜다.

아직은.

영주에서의 첫 출근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소매 아래로 손을 움직이자, 손등을 가득 덮은 붉은 주삿바늘 자국이 잠깐 드러났다.

미달이의 시선을 느낀 여자는 급히 소매를 내렸다.

그리고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은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키는 대로 다 하지 마.”

그 순간 운전석에서 이태구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뒤에,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차 안이 조용해졌다.

미달이는 창밖을 보려고 했지만 검은 유리에는 바깥 풍경이 비치지 않았다.

오직 영주 사람이 된 것처럼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과, 그 뒤로 고개를 숙인 두 여자의 얼굴만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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