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수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서킷에 돌아왔다.
그는 예전보다 말라 있었다.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던 얼굴은 지워지고, 잠을 오래 잃은 사람의 얼굴만 남아 있었다. 손에는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봉투 위에는 아무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지수는 13번 코너 앞에 섰다.
그곳은 낮에도 그늘이 짙었다. 산의 방향 때문인지, 펜스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지수는 한참 동안 검은 충돌 자국을 바라보다가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과문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것을 펼치지 못했다.
“내가 아니었어.”
그는 작게 말했다.
바람이 멎었다.
“네 인이어에 말한 거, 고의가 아니었어.”
트랙 저편에서 타이어 끄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천천히, 젖은 고무가 바닥을 문지르는 소리. 지수는 눈을 감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근데 내 책임이 아니었다고 말할 자격도 없더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날, 지수의 차량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엔진 출력이 불안정했고, 그는 팀 지시에 따라 차를 빼야 했다. 그런데 리타이어 직후 관제실과 팀 라디오 사이에 혼선이 발생했다. 사고 조사팀은 공식적으로 “통신 간섭 가능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수는 진실의 일부를 알고 있었다.
사고 일주일 전.
레이싱 주최사 홍보팀은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를 살리기 위해 음성 콘텐츠를 만들었다. 지수가 메이슨의 주행을 분석하며 조언하는 형식의 짧은 녹음이었다.
“브레이크가 빨라.”
“13번 코너에서 겁먹지 마.”
“넌 항상 거기서 져.”
자극적인 문장을 원한 건 방송사였고, 지수는 콘텐츠로서 가져다줄 파급효과를 생각하며 녹음했다.
예능처럼, 홍보처럼, 경기 전 재미있는 콘텐츠처럼.
그 녹음 파일이 왜 경기 중 메이슨의 채널로 흘러들어갔는지, 누구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누군가는 시스템 오류라고 했고, 누군가는 장비 관리자의 실수라고 했다. 한재민은 사고 뒤 조사를 받았지만, 끝내 책임 소재는 흐려졌다.
하지만 지수는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이 한 말이었다.
자신이 장난처럼 뱉은 문장들이, 메이슨의 마지막 코너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널 죽이려고 한 적 없어.”
지수는 마침내 종이를 펼쳤다.
“그런데 네가 죽기 전에 들은 목소리가 나였다는 걸 알아.”
그 순간, 13번 코너 너머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빛은 너무 낮고 흐려서 실제 차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엔진음은 분명했다. 지수는 그 빛 속에서 은색 헬멧을 보았다. 바이저가 검게 닫힌 채, 메이슨이 서 있었다.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몸은 어둠에 젖어 있었고, 찢어진 레이스 장갑의 손끝에서 검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사람 같았다. 죽기 직전까지 억울함을 삼킨 사람의 자세로, 메이슨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수는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메이슨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수는 사과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때 인이어 잡음이 서킷 전체를 채웠다.
치직.
치직.
그리고 메이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고 후에 아무 말도 안하더군.”
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너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어.”
지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메이슨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발밑에 검은 타이어 자국이 생겼다. 그 자국은 살아 있는 그림자처럼 지수의 무릎까지 뻗어 왔다.
“내가 죽고 나서도, 넌 가운데에 서있잖아.”
“아니야.”
“넌 늘 가운데였어.”
메이슨의 목소리는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나는 죽어서도 결승선을 못 봤는데.”
지수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 순간, 피트 건물 안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된 녹음처럼 갈라진 목소리였다.
“메이슨, 왜 그러는거야. 페이스 유지해. 메이슨, 듣고 있어?”
한재민의 목소리였다.
메이슨의 형상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지수도 고개를 돌렸다.
꺼져 있던 피트 모니터 하나가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사고 당일의 원본 무전 기록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3분의 기록이었다.